분류 전체보기51 깐짜나부리 전쟁박물관을 방문한 특별한 하루 방콕을 떠나 전쟁의 기억으로 들어가다 방콕에서 깐짜나부리로 향하는 아침 기차는 느릿하지만 단호했다. 도시의 회색이 논과 강물의 초록으로 바뀌자 창밖의 풍경은 과거로 이어지는 길처럼 보였다. 객차 문을 스치는 바람에는 흙내와 금속 냄새가 섞여 있었고, 좌석 너머로 들려오는 현지인들의 담담한 대화가 오늘의 목적지를 더욱 조용하게 만들었다. 역에 내리니 작은 간이매표소 옆으로 ‘Museum’ 표지판이 보였고, 매표소 직원은 지도를 펼쳐 박물관 → 다리 → 묘지로 이어지는 동선을 손가락으로 그려 주었다. 택시 대신 도보를 택해 강변을 따라 걷자, 관광지의 들뜸은 줄고 공기가 조금 차가워졌다. 입구에 서자 커다란 나무 그늘 아래로 전쟁의 연도가 적힌 표지석이 눈에 들어왔고, 바람이 불 때마다 깃발이 소리 없이 흔.. 2025. 8. 24. 태국 여행 중 생긴 작은 해프닝 예상치 못한 환승 실수와 손바닥 지도가 된 티켓 방콕에서의 첫 며칠, 나는 스스로 꽤 적응이 빠르다고 믿었다. 지하철 노선도도 머릿속에 넣었고, BTS와 MRT의 환승역 이름도 몇 번 되뇌었다. 그런데 그날 저녁, 숙소로 돌아가려 역 플랫폼에 서서 멍하니 휴대폰을 보다가 반대 방향 열차를 탄 사실을 두 정거장 지나서야 깨달았다. 급히 내려 다시 반대편으로 건너가려는데 래빗카드 잔액이 모자랐는지 개찰구가 붉은 불을 켜고 나를 붙잡았다. 지갑엔 동전이 없고, 환전한 지폐는 거스름돈이 애매했다. 당황해 발을 동동 구르는 나를 본 역무원이 “마이펜라이”라며 미소 짓고는 손짓으로 충전기를 가리켰다. 문제는 내가 태국어만 보면 문자 대신 그림처럼 읽는다는 것. 그때 옆에 있던 대학생이 “톱업, 톱업” 하며 내 카드.. 2025. 8. 24. 태국 사람들의 친절함에 감동한 순간 길을 잃은 저녁, 손바닥 지도로 시작된 인연 방콕에 도착한 첫날 저녁, 나는 BTS 환승역에서 길을 잃었다. 휴대폰 배터리는 3%가 깜빡였고, 표지판의 이름들은 낯선 성조로 춤을 추는 듯했다. 개찰구 앞에서 지도를 확대했다 줄였다 하던 순간, 옆에 서 있던 아주머니가 조심스레 다가와 “유 티 나이?” 하고 묻더니 내 손바닥을 펼쳐 달라고 했다. 아주머니는 작은 펜으로 손금 사이에 역 이름을 써 주고 화살표를 그리며 환승 방향을 알려 주었다. 그 모습을 본 대학생이 합류해 영어와 태국어, 손짓을 섞어 다음 열차 시간을 알려 주고, 래빗카드 충전 기계까지 데려가 버튼을 하나씩 눌러 보였다. “마이펜라이”라는 말과 함께, 아주머니는 내 손에 작은 병의 물을 쥐여 주었다. “사와디카, 캅쿤카.” 어설픈 발음으로.. 2025. 8. 24. 태국 길거리에서 본 왕의 사진들 도시 곳곳에서 마주한 첫 인상 태국을 처음 걷던 날, 내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광고판도 네온사인도 아니었다. 교차로와 광장, 고가도로 기둥과 학교 정문, 심지어 동네 세탁소 앞까지도 금빛 장식의 커다란 액자 속 사진이 서 있었다. 빛나는 황금색 테두리와 하늘색, 노란색의 천이 바람에 펄럭였고, 중앙에는 품위 있게 미소 짓는 왕의 얼굴이 있었다. 출근길 사람들은 그 앞을 지날 때 잠깐 걸음을 늦추고, 어떤 이는 합장해 인사를 건넸다. 나는 처음엔 국가 행사 기간이라 그런가 싶었지만, 며칠을 지켜보니 이 풍경은 특정 날의 예외가 아니라 일상의 호흡에 가까웠다. 아침이면 청소부가 먼지를 털고 꽃목걸이를 새로 걸어 주고, 저녁이면 전등이 켜져 사진이 더 또렷이 떠올랐다. 대형 쇼핑몰 입구의 화려한 조명 .. 2025. 8. 24. 길거리에서 들은 태국어, 낯설지만 아름다운 언어 골목과 시장에서 처음 만난 태국어의 소리 방콕에 도착하자마자 내 귀를 사로잡은 건 클랙슨도, 상점 스피커도 아니었다. 노점 사이를 오가며 부딪히던 짧은 인사, “사와디캅/사와디카”였다. 끝음을 살짝 올리며 미소를 얹는 그 소리는 인사이면서 리듬이었다. 꼬치를 굽던 아저씨는 “아러이 막!” 하고 엄지를 세웠고, 카페 직원은 계산이 끝날 때마다 “캅쿤 캅”으로 낮게 마무리했다. 태국어가 성조를 가진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거리의 성조는 책보다 한층 더 살아 있었다. 같은 음절이 높낮이와 곡선을 달리할 때 전혀 다른 표정이 된다. 평평하게 흐르는 말투는 안정, 높게 시작해 떨어지면 단정, 낮게 깔았다가 끝을 올리면 질문과 여지. 버스 안내방송의 억양은 내비게이션보다 친절하게 다음 정류장을 알려 주었고, 시.. 2025. 8. 24. 콘깬 대학생들과 함께한 잊지 못할 저녁 노을 진 캠퍼스에서 시작된 만남, 콘깬의 첫 저녁 콘깬에 도착한 날 저녁, 하늘은 파파야 색으로 물들고 캠퍼스 길가에는 작은 지붕이 달린 툭툭이 연달아 학생들을 내려놓고 있었다. 강의가 막 끝났다는 문자에 약속 장소로 향하니, 분수대 옆 벤치에 앉아 있던 학생들이 손을 흔들며 달려왔다. 서로의 이름을 태국식, 한국식으로 번갈아 불러 보다가 어투가 꺾여 모두가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저녁을 어디서 먹을지 묻는 질문은 곧 ‘무엇을 같이 배우고 나눌지’로 바뀌었다. 그들이 제안한 곳은 호수 공원 근처 야시장, 별빛이 켜지면 종이등이 반짝이는 거리였다. 이동하는 동안 나는 한국에서 가져온 작은 엽서를 꺼내 손글씨로 인사를 적었고, 학생들은 휴대폰 번역기에 장난스러운 이산 방언을 입력해 보여 주었다. 낯선 도시.. 2025. 8. 24. 이전 1 ··· 3 4 5 6 7 8 9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