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28 파타야 캠프창에서 배운 것: 재미 뒤에 남은 미안함 파타야의 햇빛 아래, 입장 팔찌와 악어 먹이 바구니파타야 외곽 도로를 벗어나자, 흙먼지와 나무 그늘이 번갈아 차창을 스쳤다. 주차장에 도착하면 먼저 손목에 형광색 입장 팔찌를 채워 준다. 가이드가 “천천히, 무서우면 뒤로 한 걸음 물러서세요”라고 영어와 태국어를 섞어 말했고, 우리는 울타리 쪽으로 줄을 섰다. 철망 너머의 물빛은 탁했고 표면에는 작은 나뭇잎이 떠다녔다. 직원이 커다란 빨간 바구니를 건네자 비닐장갑과 집게, 생고기가 차갑게 닿았다. 막대 끝에 고기를 끼우는 순간 손가락으로 진득한 기름이 묻어났고, 내 손목은 무의식적으로 힘을 주었다. ‘고개를 너무 낮추지 마세요’라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수면이 갈라지는 소리가 났다. 어둠 같은 등이 미끄러져 올라와 번개처럼 튀었다가 다시 가라앉았다. 철망에.. 2026. 2. 3. 아속 사거리의 붉은 신호등이 나에게 알려준 것 도심 한복판에서 갇혀버린 나의 시간과 타들어가는 속마음태국의 4월은 잔인할 정도로 뜨겁다. 가만히 서 있어도 등줄기를 타고 땀이 흐르는 이 계절에, 나는 최악의 선택을 하고야 말았다. 평소라면 당연히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나오는 BTS(지상철)나 MRT(지하철)를 탔겠지만, 그날따라 짐이 많다는 핑계로, 그리고 약속 시간에 늦었다는 조급함 때문에 덜컥 '툭툭(Tuk-tuk)'을 잡아탔다. 목적지는 방콕에서 가장 교통이 혼잡하기로 악명 높은 스쿰빗 아속(Asoke) 사거리 근처였다. 기사는 자신만만하게 "Shortcut(지름길)!"을 외치며 골목 사이사이를 누볐지만, 결국 거대한 도로의 정체 속에 우리를 밀어 넣었다. 오후 6시, 방콕의 퇴근 시간은 지옥 그 자체였다. 도로는 거대한 주차장으로 변해 있었고.. 2026. 2. 2. 방콕에서 배달음식으로 화가 사라진 이유 배달 음식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상하게도 태국에 있으면, 날이 더워서 그런지 시원한 음료를 자주 마신다. 이 시원한 음료를 마시면, 은근히 배가 고팠던 것이 사라질 때가 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애매한 시간인 오전 11시에 밥을 먹게 되고, 오후 4시가 되면 또 배가 고파진다. 오후 4시쯤 애매한 저녁을 먹고 나면, 오후 8시쯤 배가 또 고파진다. 이 시간이 되면 이미 샤워를 마친 상태이며 밖에 나가기 귀찮아진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스마트폰에서 배달 음식을 찾아보게 된다.내가 알고 있는 태국에서 배달음식 앱은 "Grab Food", "Line Man", "Food Panda"가 있다. "Food Panda"가 나름 맛있는 음식들이 많았었는데, 이상하게 2025년 상반기 부터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아.. 2026. 2. 2. 로컬 시장에서 맛본 태국 디저트 달콤한 향기가 길을 안내하다 로컬 시장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내 발걸음을 붙잡은 건 굽히는 철판의 지글거림과 코끝을 감싸는 코코넛 향이었다. 바퀴 달린 카트 위에서는 하얀 반죽이 동전 크기로 또르르 떨어지고, 그 위로 진한 코코넛 밀크가 한 번 더 얹혔다. 가장자리가 얇게 말리며 바삭해지는 순간, 아주머니는 작은 주걱으로 반달 모양을 만들어 접었다. 태국인들이 사랑하는 카놈끄록, 갓 구운 미니 팬케이크였다. 옆에는 노란 펜던 잎 향이 배어 있는 녹색 젤리가 길게 늘어선 커다란 통에서 흘러나왔고, 한쪽에서는 얇은 크레페 같은 카놈부앙이 오렌지색 달걀실(포이텅)을 얹고 있었다. 투명 플라스틱컵에 층층이 담긴 카놈뚜아이(코코넛 푸딩)는 표면이 매끈했고, 바나나 잎에 삼각뿔로 접힌 카놈사이사이에서는 따끈한 증기.. 2025. 9. 18. 나콘시탐마랏의 남탈렁(그림자극)과 왕사원, 전통이 숨 쉬는 밤 해 질 녘 왕사원에서 만난 오래된 숨 나콘시탐마랏에 도착한 저녁, 도시는 비를 머금은 남쪽 바람으로 천천히 식어 가고 있었다. 숙소에 짐을 놓자마자 나는 ‘왕사원’이라 불리는 도심의 큰 사원으로 향했다. 골목을 돌 때마다 희미한 종소리가 바람결에 실려 와 방향을 알려 주었다. 흰 옷을 입은 신도들이 향을 들고 경내로 들어갈 때, 하늘빛을 머금은 흰 첨탑이 담장 너머로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사원 앞 노점에서는 재스민 꽃목걸이와 작은 오일 램프가 엷은 향을 뿜었고, 아이들은 맨발로 비에 젖은 돌바닥을 조심스럽게 건넜다. 나는 합장을 올린 뒤, 스님의 안내를 따라 탑을 시계 방향으로 천천히 돌았다. 석양이 기울수록 첨탑의 흰빛은 은은한 회백으로 바뀌었고, 금빛 장식은 짧게 번쩍였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경.. 2025. 8. 25. 라농 온천과 비 내리는 숲, 국경 도시에서 배운 쉼 국경의 습기 속으로 들어서다, 라농 온천의 첫 숨 비가 잦기로 유명한 라농에 도착하자 공기는 이미 미세한 수증기로 가득했다. 버스에서 내려 짐을 추스르고 온천 공원으로 들어가니, 나지막한 산허리를 타고 내려온 온기가 비 냄새와 섞여 뿜어져 나왔다. 돌탕 가장자리에는 나무국자와 양동이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고, 현지인들은 먼저 손등을 적신 뒤 발목을 천천히 담갔다. 뜨겁고, 곧 따뜻해지고, 이내 편안해지는 세 단계가 규칙처럼 이어졌다. 비는 그치지 않았지만, 온천수 위로 맺힌 작은 방울들이 톡톡 튀며 금세 사라졌다. 나는 발을 담그고 허리를 세웠다. 열이 피부를 한 겹 벗기듯 스며들자 장거리 이동으로 굳어 있던 종아리가 풀리고, 머릿속의 속도도 함께 늦춰졌다. 근처에서는 은박 포일에 감싼 달걀이 작은 바구니.. 2025. 8. 25. 이전 1 2 3 4 5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