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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깬 대학생들과 함께한 잊지 못할 저녁

by Koriland 2025. 8. 24.

노을 진 캠퍼스에서 시작된 만남, 콘깬의 첫 저녁

 콘깬에 도착한 날 저녁, 하늘은 파파야 색으로 물들고 캠퍼스 길가에는 작은 지붕이 달린 툭툭이 연달아 학생들을 내려놓고 있었다. 강의가 막 끝났다는 문자에 약속 장소로 향하니, 분수대 옆 벤치에 앉아 있던 학생들이 손을 흔들며 달려왔다. 서로의 이름을 태국식, 한국식으로 번갈아 불러 보다가 어투가 꺾여 모두가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저녁을 어디서 먹을지 묻는 질문은 곧 ‘무엇을 같이 배우고 나눌지’로 바뀌었다. 그들이 제안한 곳은 호수 공원 근처 야시장, 별빛이 켜지면 종이등이 반짝이는 거리였다. 이동하는 동안 나는 한국에서 가져온 작은 엽서를 꺼내 손글씨로 인사를 적었고, 학생들은 휴대폰 번역기에 장난스러운 이산 방언을 입력해 보여 주었다. 낯선 도시의 첫 저녁은 그렇게 교과서가 아닌 사람들로 채워졌다. 가로등 아래로 내려앉은 곤충의 그림자, 오토바이 배달 상자의 파란 불빛, 멀리서 들려오는 몰람 멜로디가 하나의 배경이 되었다. ‘오늘은 우리 학교의 리듬을 알려 줄게’라는 한마디에, 나는 도시 안내서 대신 발걸음의 속도를 믿기로 했다. 분수 주변을 한 바퀴 도는 동안 그들이 알려 준 캠퍼스 지도의 ‘지름길’은 실제 지도에는 없는 방향으로 휘어 있었다. 밤마다 연습하는 치어팀의 구호가 체육관에서 쏟아져 나오고, 도서관 유리벽에는 시험기간 공지와 동아리 포스터가 겹겹이 붙어 있었다. 한 학생은 필통에서 형광펜을 꺼내 내 노트 모서리에 태국어로 내 이름을 또박또박 적어 주었다. ‘ㅅ’에 해당하는 자음이 없어서 비슷한 소리를 고른다며, 발음을 몇 번이나 확인해 주는 정성이 고마웠다. 길 모퉁이를 돌자 졸업 가운을 빌려주는 상점이 보였고, 우리는 마네킹에게 모자를 씌워 보며 사진을 찍었다. 가볍게 한 바퀴를 돌고 나니 길은 저절로 호수 쪽으로 굽어졌다. 수면 위로 반사된 주황등이 길게 흔들렸고, 바람이 불 때마다 파도가 계단처럼 모여들었다. 버스터미널에서 학교로 오는 길에 스친 간판들의 색감도 유난히 선명했다. 분홍, 청록, 레몬색이 어둠을 배경으로 떠올라 지나온 도시들과 쉽게 섞이지 않는 인상을 남겼다. 학생들은 ‘이 시간대면 교차로 신호가 길다’며 다른 골목으로 나를 이끌었고, 그 길에서만 파는 디저트라며 작은 바나나 케이크도 하나 사주었다.

노상 테이블 위의 수업, 이산의 맛과 웃음으로 배운 언어

 야시장 초입에는 소금구이 치킨 냄새가 먼저 우리를 붙잡았다. 학생들이 추천한 메뉴는 쏨땀, 라프, 가이양, 그리고 손바닥만 한 찹쌀바구니였다. 찬 라임과 마늘, 고추가 절구에서 둥탁둥탁 박자를 만들 때마다 향이 일어서는 것이 보이는 듯했다. ‘매운 정도 몇?’이라는 질문에 손가락으로 수를 세며 흥정을 하자 주인아주머니가 장난스레 고추를 하나 더 집어넣었다. 우리는 손으로 찹쌀을 집어 작은 공을 만든 뒤 치킨을 찢어 얹어 먹고, 쏨땀 국물에 살짝 적셔 입안에서 박자를 맞췄다. 음식의 순서가 대화의 순서가 되었고, 누군가는 군 복무 이야기, 누군가는 졸업 프로젝트의 막막함, 누군가는 고향의 논과 부모님의 새벽을 꺼내놓았다. 태국어와 한국어, 영어가 뒤섞인 문장 속에서도 ‘잘 먹었다’와 ‘괜찮다’는 단어는 거의 동시에 통역되었다. 어느새 기타가 등장했고, 몰람 리듬에 맞춰 박수를 치다 보니 옆 테이블의 손님들까지 후렴을 따라 불렀다. 학생 한 명이 대나무 피리 ‘껜’을 꺼내 짧은 선율을 들려주자, 상인은 테이블 위로 작은 촛불을 내어 주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불꽃이 고개를 숙였다가 일어서듯, 대화도 가볍게 굽이치며 더 깊어졌다. 같은 저녁인데 각자의 사연이 다르고, 같은 노래인데 목소리는 조금씩 달랐다. 그 차이가 바로 우리를 끝까지 묶어 주는 끈이라는 걸, 기름 종이에 손가락이 번들거릴 때 쯤 알게 되었다. 식탁 위에는 종이컵과 플라스틱 접시가 어지럽게 놓였지만 누구도 서두르지 않았다. 음악이 조금 커지면 대화는 몸짓과 표정으로 이어졌고, 매운맛이 과해지면 코코넛 물이 잠깐씩 중재에 나섰다. 학생들이 ‘우리 지역 최고의 쏨땀집’이라며 지도 앱에 별표를 찍어 주는 사이, 상인은 배달 오토바이 행렬 속에서도 매번 우리 자리로 눈을 맞춰 ‘맛있냐’고 손짓했다. 나는 한국의 야시장 풍경을 설명하며 떡볶이와 어묵 사진을 보여 주었고, 그들은 어릴 적 학교 앞 튀김 노점의 추억을 들려주었다. 어느새 테이블 모서리에는 서로의 말이 섞인 메모지가 쌓였다. ‘캅쿤’, ‘맛있다’, ‘맵지 않게’ 같은 단어들이 두 언어로 나란히 적혔다. 누구도 선생이 아니었지만, 모두가 잠시씩 선생이 되었다. 라프에 라임을 한 번 더 짜서 비비자 향신료가 선명해졌다. 누군가는 쌀국수에 고추를 더했고, 누군가는 맥주 잔에 얼음을 채웠다. 나는 ‘한국에서는 맥주에 얼음을 잘 넣지 않는다’고 설명했고, 학생들은 더운 밤에는 이렇게 마시는 게 오래 이야기하기에 좋다며 웃었다. 기타를 치던 학생이 갑자기 템포를 낮추자, 상인은 계산대를 잠시 비워 우리 곁으로 와 박자를 맞춰 주었다. 주변 테이블에서 ‘한 번 더!’라는 외침이 터지자, 우리는 서로의 이름을 노랫말 사이에 섞어 불렀다. 이름이 호흡처럼 리듬에 박힐 때, 낯선 사이에서 친구가 되는 시간은 아주 짧아졌다.

호숫가 밤바람과 약속, 잊지 못할 저녁이 남긴 것

 식사를 마치고 호수 쪽으로 걸음을 옮기니 분수의 물기둥이 조용히 올라갔다가 부서지며 별빛을 흩뿌렸다. 졸업을 앞둔 학생은 방콕 취업을 고민했고, 다른 학생은 고향에 남아 가족 사업을 돕고 싶다고 했다. 나는 한국에서의 첫 직장과 이직의 공백, 실패 뒤의 작은 성취를 떠올려 들려주었다. 누군가가 ‘성공이 뭐냐’고 물었을 때, 우리는 잠시 말을 멈추고 물가에 앉아 파문을 세었다. 누군가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저녁을 온전히 먹는 것’이라고 했고, 또 다른 이는 ‘하고 싶은 말을 말할 수 있는 용기’라고 했다. 밤바람이 땀을 식히자 호숫가의 풍경은 공연이 끝난 무대처럼 조용해졌다. 헤어지기 전 각자 한 가지씩 다음 만남의 숙제를 정했다. 나는 한국식 김치볶음밥 레시피를, 학생들은 몰람 플레이리스트와 이산어 인사법을. 사진을 찍자며 휴대폰을 든 순간, 누구랄 것도 없이 화면보다 서로의 얼굴을 먼저 바라보며 크게 웃었다. 숙소로 돌아오는 오토바이 뒤에서 도시의 불빛이 길게 늘어졌다. 오늘 저녁의 값은 영수증에 적히지 않는다. 대신 다음 도시를 향해 떠나는 날, 내 배낭의 무게에서 자연스레 알게 될 것이다. 그날의 약속과 웃음, 입 안의 매운 여운, 그리고 천천히 늦춰진 걸음의 속도가 내 여행의 리듬을 바꿔 놓았다는 것을. 호수 둘레길을 걷다가 작은 전망대에 올라가자 멀리 스타디움의 조명이 파도처럼 켜졌다. 공중에 매달린 벌레들이 빛을 따라 춤을 추고, 우리는 휴대폰 플래시를 켜지 않기로 했다. 어둠을 밝히는 대신, 어둠이 보여 주는 것을 보기로 한 것이다. 작별 인사를 나누며 한 학생이 팔찌를 건넸다. 얇은 실에 작은 매듭을 이어 만든 것으로, 시험이 잘 되기를 바란다는 뜻이 담겼다고 했다. 나는 배낭 지퍼고리에 그것을 묶으며 한국에 오면 보낼 엽서를 약속했다. 돌아오는 길, 시장 후미진 골목에서 고양이 한 마리가 우리를 앞장섰다. 오토바이 배기음과 과일 냉장고의 모터 소리가 낮게 섞였고, 그 위로 누군가의 웃음이 짧게 튀었다. 도시가 잠들 준비를 하는 소리였다. 숙소에 돌아가자마자 메시지 알림이 울렸다. 오늘 찍은 사진과 함께 ‘잘 들어갔냐’는 간단한 안부, 그리고 내일 수업이 끝나면 근처 사원에서 열리는 작은 음악회를 같이 가자는 초대였다. 나는 고맙다는 말을 두 번 적었다가 지우고, 한 번만 남겼다. 과한 친밀함 대신 오래 가는 간격을 배우고 싶어서였다. 침대에 눕자 매운맛이 아직도 입안 구석에 남아 있었다. 낯선 도시의 첫 저녁에 배운 가장 큰 문장은 ‘천천히’였다. 더 많이 말하기보다 더 오래 듣는 법, 먼저 길을 묻기보다 함께 걷는 법. 작은 약속 하나가 도시의 지도를 새로 그렸다. 그 느린 보폭이 내일의 선택을 가볍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