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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컬 시장에서 맛본 태국 디저트 달콤한 향기가 길을 안내하다 로컬 시장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내 발걸음을 붙잡은 건 굽히는 철판의 지글거림과 코끝을 감싸는 코코넛 향이었다. 바퀴 달린 카트 위에서는 하얀 반죽이 동전 크기로 또르르 떨어지고, 그 위로 진한 코코넛 밀크가 한 번 더 얹혔다. 가장자리가 얇게 말리며 바삭해지는 순간, 아주머니는 작은 주걱으로 반달 모양을 만들어 접었다. 태국인들이 사랑하는 카놈끄록, 갓 구운 미니 팬케이크였다. 옆에는 노란 펜던 잎 향이 배어 있는 녹색 젤리가 길게 늘어선 커다란 통에서 흘러나왔고, 한쪽에서는 얇은 크레페 같은 카놈부앙이 오렌지색 달걀실(포이텅)을 얹고 있었다. 투명 플라스틱컵에 층층이 담긴 카놈뚜아이(코코넛 푸딩)는 표면이 매끈했고, 바나나 잎에 삼각뿔로 접힌 카놈사이사이에서는 따끈한 증기.. 2025. 9. 18.
나콘시탐마랏의 남탈렁(그림자극)과 왕사원, 전통이 숨 쉬는 밤 해 질 녘 왕사원에서 만난 오래된 숨 나콘시탐마랏에 도착한 저녁, 도시는 비를 머금은 남쪽 바람으로 천천히 식어 가고 있었다. 숙소에 짐을 놓자마자 나는 ‘왕사원’이라 불리는 도심의 큰 사원으로 향했다. 골목을 돌 때마다 희미한 종소리가 바람결에 실려 와 방향을 알려 주었다. 흰 옷을 입은 신도들이 향을 들고 경내로 들어갈 때, 하늘빛을 머금은 흰 첨탑이 담장 너머로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사원 앞 노점에서는 재스민 꽃목걸이와 작은 오일 램프가 엷은 향을 뿜었고, 아이들은 맨발로 비에 젖은 돌바닥을 조심스럽게 건넜다. 나는 합장을 올린 뒤, 스님의 안내를 따라 탑을 시계 방향으로 천천히 돌았다. 석양이 기울수록 첨탑의 흰빛은 은은한 회백으로 바뀌었고, 금빛 장식은 짧게 번쩍였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경.. 2025. 8. 25.
라농 온천과 비 내리는 숲, 국경 도시에서 배운 쉼 국경의 습기 속으로 들어서다, 라농 온천의 첫 숨 비가 잦기로 유명한 라농에 도착하자 공기는 이미 미세한 수증기로 가득했다. 버스에서 내려 짐을 추스르고 온천 공원으로 들어가니, 나지막한 산허리를 타고 내려온 온기가 비 냄새와 섞여 뿜어져 나왔다. 돌탕 가장자리에는 나무국자와 양동이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고, 현지인들은 먼저 손등을 적신 뒤 발목을 천천히 담갔다. 뜨겁고, 곧 따뜻해지고, 이내 편안해지는 세 단계가 규칙처럼 이어졌다. 비는 그치지 않았지만, 온천수 위로 맺힌 작은 방울들이 톡톡 튀며 금세 사라졌다. 나는 발을 담그고 허리를 세웠다. 열이 피부를 한 겹 벗기듯 스며들자 장거리 이동으로 굳어 있던 종아리가 풀리고, 머릿속의 속도도 함께 늦춰졌다. 근처에서는 은박 포일에 감싼 달걀이 작은 바구니.. 2025. 8. 25.
송클라·핫야이 새벽 딤섬 골목과 킴용마켓 흥정기 새벽 딤섬 골목에서 깨어나는 도시는 찻잔 소리로 시작된다 핫야이의 새벽은 시장 바닥을 밀어 닦는 물소리와 함께 열린다. 삼륜 리어카가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찜통을 싣고 골목 입구에 멈추면, 찻주전자에서 흘러내린 증기가 형광등 아래로 흩어진다. 둥근 대나무 찜통 뚜껑을 여는 순간 하얀 모락 사이로 샤오마이와 하가우, 부드럽게 달인 돼지갈비, 생강을 올린 흰 살생선이 얼굴을 내민다. 주문 방식은 단순하지만 리듬이 있다. 테이블에 놓인 금속 접시에 원하는 딤섬을 담아 건네고, 차는 뜨거운 보이차나 국화차 중에서 고르면 된다. 간장과 식초, 달큰한 칠리소스를 한 숟갈씩 섞어 찍어 먹으면, 딤섬의 결이 혀끝에서 또렷해진다. 앞자리 노인은 찹쌀 라오닝쪼우에 백년란을 부숴 넣고, 옆자리 학생은 새벽 수업을 앞두고 .. 2025. 8. 25.
깐짜나부리 전쟁박물관을 방문한 특별한 하루 방콕을 떠나 전쟁의 기억으로 들어가다 방콕에서 깐짜나부리로 향하는 아침 기차는 느릿하지만 단호했다. 도시의 회색이 논과 강물의 초록으로 바뀌자 창밖의 풍경은 과거로 이어지는 길처럼 보였다. 객차 문을 스치는 바람에는 흙내와 금속 냄새가 섞여 있었고, 좌석 너머로 들려오는 현지인들의 담담한 대화가 오늘의 목적지를 더욱 조용하게 만들었다. 역에 내리니 작은 간이매표소 옆으로 ‘Museum’ 표지판이 보였고, 매표소 직원은 지도를 펼쳐 박물관 → 다리 → 묘지로 이어지는 동선을 손가락으로 그려 주었다. 택시 대신 도보를 택해 강변을 따라 걷자, 관광지의 들뜸은 줄고 공기가 조금 차가워졌다. 입구에 서자 커다란 나무 그늘 아래로 전쟁의 연도가 적힌 표지석이 눈에 들어왔고, 바람이 불 때마다 깃발이 소리 없이 흔.. 2025. 8. 24.
태국 여행 중 생긴 작은 해프닝 예상치 못한 환승 실수와 손바닥 지도가 된 티켓 방콕에서의 첫 며칠, 나는 스스로 꽤 적응이 빠르다고 믿었다. 지하철 노선도도 머릿속에 넣었고, BTS와 MRT의 환승역 이름도 몇 번 되뇌었다. 그런데 그날 저녁, 숙소로 돌아가려 역 플랫폼에 서서 멍하니 휴대폰을 보다가 반대 방향 열차를 탄 사실을 두 정거장 지나서야 깨달았다. 급히 내려 다시 반대편으로 건너가려는데 래빗카드 잔액이 모자랐는지 개찰구가 붉은 불을 켜고 나를 붙잡았다. 지갑엔 동전이 없고, 환전한 지폐는 거스름돈이 애매했다. 당황해 발을 동동 구르는 나를 본 역무원이 “마이펜라이”라며 미소 짓고는 손짓으로 충전기를 가리켰다. 문제는 내가 태국어만 보면 문자 대신 그림처럼 읽는다는 것. 그때 옆에 있던 대학생이 “톱업, 톱업” 하며 내 카드.. 2025. 8.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