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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길거리에서 본 왕의 사진들

by Koriland 2025. 8. 24.

도시 곳곳에서 마주한 첫 인상

 태국을 처음 걷던 날, 내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광고판도 네온사인도 아니었다. 교차로와 광장, 고가도로 기둥과 학교 정문, 심지어 동네 세탁소 앞까지도 금빛 장식의 커다란 액자 속 사진이 서 있었다. 빛나는 황금색 테두리와 하늘색, 노란색의 천이 바람에 펄럭였고, 중앙에는 품위 있게 미소 짓는 왕의 얼굴이 있었다. 출근길 사람들은 그 앞을 지날 때 잠깐 걸음을 늦추고, 어떤 이는 합장해 인사를 건넸다. 나는 처음엔 국가 행사 기간이라 그런가 싶었지만, 며칠을 지켜보니 이 풍경은 특정 날의 예외가 아니라 일상의 호흡에 가까웠다. 아침이면 청소부가 먼지를 털고 꽃목걸이를 새로 걸어 주고, 저녁이면 전등이 켜져 사진이 더 또렷이 떠올랐다. 대형 쇼핑몰 입구의 화려한 조명 속에서도, 동네 시장의 비닐 천막 아래에서도 사진은 같은 자리를 지켰다. 때로는 왕이 군복을 입고 행사를 주관하는 순간이었고, 때로는 어린아이의 손을 잡고 웃는 장면이었다. 나는 그 앞에서 사진을 찍을 때 무심코 등을 기대려다 옆에 있던 아주머니의 부드러운 손짓을 보고 멈췄다. 그제야 알았다. 이 사진들은 장식물이 아니라 태국 사람들이 서로에게 건네는 약속이며, 도시가 공유하는 존중의 표정이라는 것을. 낯선 여행자에게는 풍경이지만, 그들에게는 마음을 모으는 부호였다. 노란 리본, 흰 꽃장식, 선명한 왕실 문양이 겹쳐질 때, 복잡한 교차로도 잠시 조용해지는 듯했다. 나는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며 숨을 고르고, 눈앞의 금빛 액자를 한 장의 역사책처럼 읽어 보았다. 점심 무렵이면 꽃장식 사이에 작은 국기가 꽂히고, 주말에는 학생들이 사다리를 타고 비뚤어진 액자를 반듯이 돌려 놓았다. 누군가는 지나가며 손바닥으로 먼지를 쓸어 내렸고, 누군가는 사진 아래 작은 향을 꽂았다. 차창 넘어 보이는 초상 하나가 도시의 속도를 잠깐 늦추는 순간, 나는 이곳의 ‘존중’이 말보다 먼저 배워지는 언어라는 생각을 했다.

사진을 둘러싼 일상의 장면들

 사진이 서 있는 자리에서 나는 도시의 리듬을 더 세밀하게 보게 되었다. 아침 출근길에 학교 앞 사진을 닦던 경비 아저씨는 내게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로 인사를 건넸다. 점심시간 시장 입구의 초상 앞에서는 상인들이 과일 상자를 내려놓고 잠시 그늘에 쉼을 얹었다. 빗줄기가 굵어지던 날엔 비닐을 씌우고 전등선을 흔들어 물을 털어 냈고, 축제 기간에는 노란 천을 한 겹 더 둘러 화사함을 더했다. 차량 대시보드에는 조그만 액자나 스티커가 붙어 있었는데, 운전기사는 굽은 길에서 속도를 늦추며 ‘이 길은 유난히 구불구불하니 조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버스 정류장의 벤치에는 왕의 생일 주간에 만든 리본이 달려 있었고, 저녁 뉴스가 시작되면 근처 전광판에 경축 문구가 번쩍였다. 나는 이 풍경이 권위를 강요한다기보다 공동체가 스스로 품위와 질서를 확인하는 방식처럼 느껴졌다. 셀카를 찍다 초상을 가리는 자세가 되어 버리면, 누군가는 조용히 손짓으로 방향을 바꿔 주었다. 누구도 소리치지 않았지만, 모두가 자연스럽게 선을 그었다. 사원 앞마당에서는 자원봉사자들이 꽃을 갈아 끼우며 서로의 하루를 묻고, 학생들은 청소 도구를 들고 액자의 금빛 장식을 조심스레 닦았다. 때로는 여행자들이 ‘왜 이렇게 많지?’ 하고 물었고, 상인은 ‘있는 것이 마음이 놓인다’며 짧게 답했다. 나는 그 대답에 고개를 끄덕였다. 사진은 도시를 하나로 묶는 구두점이었고, 바쁜 문장 사이에 숨을 놓아 주는 쉼표였다. 해가 지고 오토바이 배달 상자의 붉은 등이 줄지어 지나갈 때, 초상 아래 작은 전구는 유리 속 얼굴을 은은하게 밝혀 밤거리를 부드럽게 만들었다. 그 빛이 이 도시의 밤을 불필요한 소음 대신 조용한 존중으로 채우는 것 같았다. 주말마다 열리는 장터에서는 지역 예술가가 만든 축소 초상 카드가 판매되었고, 젊은 부부는 신혼집 현관에 붙일 작은 액자를 고르며 서로의 취향을 맞춰 갔다. 사진을 바라보는 자세에는 세대의 차이보다 습관의 힘이 컸다. 어린아이도 부모의 어깨 너머에서 조용히 두 손을 모으는 법을 배웠다.

여행자가 배운 존중의 언어

 여행자에게 사진은 종종 배경이 되지만, 여기서는 배경이 곧 메시지였다. 나는 몇 가지 작은 습관을 배웠다. 첫째, 사진 앞에서는 길을 막지 않고 한 발 비켜 서기. 둘째, 셀카봉을 들었다면 화면 안팎의 사람과 초상을 함께 배려하기. 셋째, 해가 진 뒤 전등이 켜진 사진을 지나칠 때는 음악 볼륨을 살짝 낮추는 것. 이 사소한 동작들이 모여 도시의 저녁을 단단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존중은 거창한 의식보다 반복되는 몸짓에서 더 또렷했다. 나는 길모퉁이 가판대에서 노란 리본을 하나 사서 배낭에 달았다. 그 리본은 규범을 강요하는 표지가 아니라, 낯선 나라의 질서를 스스로 기억하기 위한 나만의 메모처럼 느껴졌다. 어느 날, 비가 쏟아져 액자 위로 물길이 생기자 근처 상인이 의자를 빌려 주었고, 행인은 올라가 천을 정리했다. 나는 우산을 들어 물이 떨어지지 않게 받쳐 들었다. 말 한마디 섞지 않았지만, 셋의 손놀림은 합주처럼 맞아떨어졌다. 작업이 끝나자 상인은 ‘캅쿤’이라며 미소 지었고, 우리는 각자 길을 건넜다. 그 짧한 순간 덕분에 나는 여행이란 사진에 나를 집어넣는 일이 아니라, 사진이 의미하는 질서 속으로 잠시 들어갔다가 조용히 나오는 과정임을 알게 되었다. 다음 날, 광장 한복판의 커다란 초상 앞에서 나는 잠깐 걸음을 멈추었다. 금빛 테두리와 천의 주름, 유리 표면에 비친 구름의 속도가 한 장의 초상에 겹쳐졌다. 현지인 소년이 옆에서 합장을 하기에 나도 짧게 고개를 숙였다. 그 동작 하나가 여행의 많은 오해를 지워 주었다. 태국 길거리에서 본 왕의 사진들은 나에게 ‘존중은 공간을 정리하고 시간을 고요하게 만든다’는 교훈을 남겼다. 그리고 그 고요 덕분에 나는 이 도시의 수많은 이야기와 더 또렷이 마주할 수 있었다. 마지막 밤, 호텔 창문에서 내려다본 교차로의 불빛 사이로도 초상의 사각형이 또렷했다. 트럭과 오토바이가 엇갈리며 만드는 소음의 물결 속에서도, 그 사각형은 이상하리만큼 조용했다. 나는 그 조용함을 내 여행 노트의 첫 장에 붙여 두었다. 다음 도시로 이동하더라도, 사람을 대하는 속도와 목소리의 높낮이는 그 사각형을 떠올리며 조정하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