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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사람들의 친절함에 감동한 순간

by Koriland 2025. 8. 24.

길을 잃은 저녁, 손바닥 지도로 시작된 인연

 방콕에 도착한 첫날 저녁, 나는 BTS 환승역에서 길을 잃었다. 휴대폰 배터리는 3%가 깜빡였고, 표지판의 이름들은 낯선 성조로 춤을 추는 듯했다. 개찰구 앞에서 지도를 확대했다 줄였다 하던 순간, 옆에 서 있던 아주머니가 조심스레 다가와 “유 티 나이?” 하고 묻더니 내 손바닥을 펼쳐 달라고 했다. 아주머니는 작은 펜으로 손금 사이에 역 이름을 써 주고 화살표를 그리며 환승 방향을 알려 주었다. 그 모습을 본 대학생이 합류해 영어와 태국어, 손짓을 섞어 다음 열차 시간을 알려 주고, 래빗카드 충전 기계까지 데려가 버튼을 하나씩 눌러 보였다. “마이펜라이”라는 말과 함께, 아주머니는 내 손에 작은 병의 물을 쥐여 주었다. “사와디카, 캅쿤카.” 어설픈 발음으로 인사를 건네자 두 사람은 동시에 웃었다. 그 웃음 때문에, 나는 갑자기 도시가 덜 낯설어졌다. 열차가 들어오기 전, 학생은 내 휴대폰에 목적지 역 이름을 태국어로 저장해 두었고, 아주머니는 내 손바닥 지도 끝에 하트를 그려 넣었다. 기차 안에서 그 작은 하트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도와주고 싶은 마음’에는 번역이 필요 없구나. 플랫폼 안내음이 울리고 문이 닫히자, 유리 너머로 두 사람의 손짓이 천천히 멀어졌다. 그날 밤 숙소에 도착해 손등에 남은 잉크 자국을 씻어내며, 나는 여행 첫 장의 제목을 조용히 정했다. ‘낯선 도시에서 가장 먼저 배운 문장: 괜찮아요, 마이펜라이.’ 길을 잃었다고 생각했던 시간은 사실, 친절을 만날 좌표를 찾는 과정이었다.

시장 한가운데서 받은 응급 수업, 배려가 레시피가 될 때

 콘깬의 야시장에서 쏨땀을 처음 먹었을 때, 매운맛이 예상보다 훨씬 빨랐다. 혀끝이 얼얼해져 물을 찾는데, 노점 아주머니가 먼저 눈치를 채고 코코넛 물을 내밀었다. 내가 지갑을 꺼내자 아주머니는 고개를 저으며 “다이, 다이(괜찮다)”라고 손사래를 쳤다. 잠시 후 아주머니는 절구를 다시 들고 고추를 한 알만 넣어 소스를 새로 만들더니, 내 접시에 살짝 끼얹고 “펫 니트노이(조금만 맵게)”라고 천천히 따라 말하게 했다. 옆자리 청년은 냅킨에 태국어 표기와 라틴 문자 발음을 적어 주며, 다음 번엔 주문할 때 이렇게 말하면 된다고 미니 수업을 열었다. 매운 기운이 가셨을 즈음, 머리가 살짝 지끈거린다고 하자 청년은 근처 약국까지 걸음을 함께 옮겼다. 약사는 영어가 서툴렀지만, 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톡톡 두드리며 “사이바이 마이?” 하고 안부를 묻고, 해열·진통제 상자에 복용 시간표를 태국어와 숫자로 적어 주었다. 계산을 마치고 나오려는데, 비가 퍼붓듯 쏟아졌다. 앞가게에서 비닐 우비를 파는 것을 본 약사는 내 손에 작은 투명 우비를 쥐여 주고 “캅쿤”이라는 내 인사에 고개를 깊게 끄덕였다. 빗소리 사이로 시장의 음악이 잦아들자, 아주머니는 비닐 천막을 더 내려 내 자리 쪽 빗방울을 막아 주었다. 나는 한국에서 가져온 작은 엽서에 ‘맛있었어요(아러이 막)’라고 서툴게 적어 건넸다. 아주머니는 엽서를 두 손으로 받으며, 내 발음을 한 번 더 또박또박 고쳐 주었다. 그날 밤, 시장에서 배운 것은 ‘태국 음식의 매운맛’이 아니라 ‘상대의 속도에 맞춰주는 친절’이었다. 입맛에 맞게 레시피가 조정되듯, 배려도 상대를 중심에 두고 조미료처럼 가감될 수 있다는 사실을 나는 그때 처음 깨달았다.

폭우와 분실, 그리고 되돌아온 것들

 우돈타니에서는 갑작스러운 폭우를 만났다. 길모퉁이 카페의 차양막 아래로 뛰어들자, 바리스타가 수건을 들고 나와 젖은 어깨를 먼저 닦으라고 내밀었다. 바닥이 미끄러우니 조심하라며, 바람이 덜 들어오는 구석자리로 의자를 옮겨 주고, 컵 밑에 물방울이 번지지 않도록 코스터를 한 장 더 겹쳐 놓았다. 빗줄기가 잠시 잦아든 틈에 서둘러 나왔는데, 몇 분 후 허둥지둥 다시 카페로 뛰어갔다. 가방 앞주머니에 넣어 둔 작은 지갑이 없어진 걸 그제서야 알았기 때문이다. 카페에 돌아오자 바리스타는 이미 지갑을 카운터 위에 올려두고 있었다. 가게 앞을 쓸던 청소 아주머니가 테라스 의자 밑에서 주웠다며 건넸다는 것이다. 현금도, 영수증도 하나 빠짐없이 그대로였다. 나는 연신 “캅쿤 캅”을 반복했고, 바리스타는 “마이펜라이”라고 웃으며 양손을 흔들었다. 방콕에서는 버스에서 내릴 때 운전기사가 내 뒷사람에게 “조심히 내려요”라고 말하며 잠깐 브레이크를 더 밟아 주는 장면을 보았다. 파타야에서는 태풍 예보가 있던 날, 노점 주인이 낯선 우리에게 파라솔을 접지 말고 잠시 더 앉아 있으라며 맥주잔에 얼음을 새로 채워 줬다. 이런 장면들이 쌓이자, ‘친절’은 낱개의 선행이 아니라 태국 사람들이 매일 꺼내 쓰는 생활의 기본값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나도 나만의 기본값을 정했다. 첫째, 인사를 먼저 한다. 둘째, 도움을 받았을 때는 작은 메모나 캔디라도 남긴다. 셋째, 길을 묻는 대신 함께 걸을 여유가 있으면 두세 걸음이라도 동행한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면, 내가 받은 친절의 양만큼은 아니더라도 분명 어떤 형태의 온기가 주변으로 조금은 되돌아간다. 여행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나는 손바닥에 남아 있던 작은 펜 자국을 떠올렸다. 길을 알려 주던 화살표, 비를 막아 주던 천막의 손, 분실물을 되돌려 주던 낯선 이의 미소. 그 모든 장면은 결국 하나의 문장으로 합쳐졌다. “사람 때문에 다시 오고 싶은 나라.” 태국에서 내가 가장 많이 배운 단어는 ‘감사합니다’가 아니었다. ‘괜찮아요’였다. 그 말이야말로 친절을 시작하게 하고, 친절을 부드럽게 끝내 주는, 이 나라의 일상적인 주문(呪文)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