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25 태국 사람들의 친절함에 감동한 순간 길을 잃은 저녁, 손바닥 지도로 시작된 인연 방콕에 도착한 첫날 저녁, 나는 BTS 환승역에서 길을 잃었다. 휴대폰 배터리는 3%가 깜빡였고, 표지판의 이름들은 낯선 성조로 춤을 추는 듯했다. 개찰구 앞에서 지도를 확대했다 줄였다 하던 순간, 옆에 서 있던 아주머니가 조심스레 다가와 “유 티 나이?” 하고 묻더니 내 손바닥을 펼쳐 달라고 했다. 아주머니는 작은 펜으로 손금 사이에 역 이름을 써 주고 화살표를 그리며 환승 방향을 알려 주었다. 그 모습을 본 대학생이 합류해 영어와 태국어, 손짓을 섞어 다음 열차 시간을 알려 주고, 래빗카드 충전 기계까지 데려가 버튼을 하나씩 눌러 보였다. “마이펜라이”라는 말과 함께, 아주머니는 내 손에 작은 병의 물을 쥐여 주었다. “사와디카, 캅쿤카.” 어설픈 발음으로.. 2025. 8. 24. 태국 길거리에서 본 왕의 사진들 도시 곳곳에서 마주한 첫 인상 태국을 처음 걷던 날, 내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광고판도 네온사인도 아니었다. 교차로와 광장, 고가도로 기둥과 학교 정문, 심지어 동네 세탁소 앞까지도 금빛 장식의 커다란 액자 속 사진이 서 있었다. 빛나는 황금색 테두리와 하늘색, 노란색의 천이 바람에 펄럭였고, 중앙에는 품위 있게 미소 짓는 왕의 얼굴이 있었다. 출근길 사람들은 그 앞을 지날 때 잠깐 걸음을 늦추고, 어떤 이는 합장해 인사를 건넸다. 나는 처음엔 국가 행사 기간이라 그런가 싶었지만, 며칠을 지켜보니 이 풍경은 특정 날의 예외가 아니라 일상의 호흡에 가까웠다. 아침이면 청소부가 먼지를 털고 꽃목걸이를 새로 걸어 주고, 저녁이면 전등이 켜져 사진이 더 또렷이 떠올랐다. 대형 쇼핑몰 입구의 화려한 조명 .. 2025. 8. 24. 길거리에서 들은 태국어, 낯설지만 아름다운 언어 골목과 시장에서 처음 만난 태국어의 소리 방콕에 도착하자마자 내 귀를 사로잡은 건 클랙슨도, 상점 스피커도 아니었다. 노점 사이를 오가며 부딪히던 짧은 인사, “사와디캅/사와디카”였다. 끝음을 살짝 올리며 미소를 얹는 그 소리는 인사이면서 리듬이었다. 꼬치를 굽던 아저씨는 “아러이 막!” 하고 엄지를 세웠고, 카페 직원은 계산이 끝날 때마다 “캅쿤 캅”으로 낮게 마무리했다. 태국어가 성조를 가진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거리의 성조는 책보다 한층 더 살아 있었다. 같은 음절이 높낮이와 곡선을 달리할 때 전혀 다른 표정이 된다. 평평하게 흐르는 말투는 안정, 높게 시작해 떨어지면 단정, 낮게 깔았다가 끝을 올리면 질문과 여지. 버스 안내방송의 억양은 내비게이션보다 친절하게 다음 정류장을 알려 주었고, 시.. 2025. 8. 24. 콘깬 대학생들과 함께한 잊지 못할 저녁 노을 진 캠퍼스에서 시작된 만남, 콘깬의 첫 저녁 콘깬에 도착한 날 저녁, 하늘은 파파야 색으로 물들고 캠퍼스 길가에는 작은 지붕이 달린 툭툭이 연달아 학생들을 내려놓고 있었다. 강의가 막 끝났다는 문자에 약속 장소로 향하니, 분수대 옆 벤치에 앉아 있던 학생들이 손을 흔들며 달려왔다. 서로의 이름을 태국식, 한국식으로 번갈아 불러 보다가 어투가 꺾여 모두가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저녁을 어디서 먹을지 묻는 질문은 곧 ‘무엇을 같이 배우고 나눌지’로 바뀌었다. 그들이 제안한 곳은 호수 공원 근처 야시장, 별빛이 켜지면 종이등이 반짝이는 거리였다. 이동하는 동안 나는 한국에서 가져온 작은 엽서를 꺼내 손글씨로 인사를 적었고, 학생들은 휴대폰 번역기에 장난스러운 이산 방언을 입력해 보여 주었다. 낯선 도시.. 2025. 8. 24. 우돈타니 붉은연꽃바다에서 본 장관 새벽 물안개와 붉은연꽃바다로 가는 첫 항해 우돈타니의 새벽은 도시의 소음 대신 물새 울음과 얕은 물안개로 시작됐다. 붉은연꽃바다로 불리는 넓은 호수로 가는 부두에는 작은 목선들이 줄지어 서 있었고, 배사공은 손전등으로 갑판을 비추며 구명조끼를 건넸다. 모터가 낮게 울리자 호수 표면이 비늘처럼 떨렸고, 차가운 바람이 뺨을 스쳤다. 수평선 위로 아주 얇은 빛이 번질 때 물빛은 회색에서 은빛, 다시 연분홍으로 옮겨 갔다. 이른 시간에 떠난 이유는 분명했다. 해가 높아지기 전, 연꽃이 가장 또렷이 깨어나는 순간을 만나기 위해서다. 배는 갈대를 스치며 천천히 호수의 심장부로 나아갔고, 물 위에 떠 있는 작은 사당에는 아침공양을 올리던 현지인들의 합장이 남아 있었다. 항로를 가르는 물살 뒤로 가느다란 파문이 퍼지더.. 2025. 8. 23. 태국 택시비 흥정에서 배운 교훈 공항에서 맞닥뜨린 첫 흥정과 준비 태국에 처음 도착했을 때 나는 공항 자동문을 나서는 순간부터 ‘가격’이 말을 거는 도시와 마주했다. 길게 이어진 택시 승강장, 형형색색의 차량 사이로 기사들이 다가와 목적지를 묻고는 미터 대신 정액을 자연스럽게 제시했다. 한국의 감각으로는 낯설고도 불편했다. 우리는 보통 미터기가 켜지는 순간부터 거래가 시작된다고 믿는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합의된 가격’이 먼저 나오고, 그다음에 이동이 따라붙는 일이 드물지 않았다. 나는 여행 초보의 순진함으로 고개를 끄덕였다가 곧 후회했다. 숙소에 도착하니 짐을 내리기도 전에 계산서처럼 불쑥 내밀어진 금액이 예상보다 훨씬 컸던 것이다. 방 안에 들어와 에어컨 바람을 맞으며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지금 불편했던 건 돈 때문만이 아니라.. 2025. 8. 23. 이전 1 2 3 4 5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