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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사람들이 친절하다고 느낀 순간들

by Koriland 2026. 2. 13.

길을 묻는 순간, 예상보다 오래 머물렀던 대화

태국에 처음 갔을 때 나는 늘 지도를 들여다보며 움직였다. 구글맵이 있으면 다 해결될 거라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생각보다 자주 길을 헤맸다. 특히 골목이 많은 지역에서는 위치가 조금만 어긋나도 다른 길로 들어서게 된다. 어느 날은 BTS 역에서 내려 숙소를 찾아가다가 방향을 완전히 잘못 잡았다. 더운 날씨에 이미 땀은 많이 났고, 휴대폰 배터리도 많지 않았다. 근처 상점 앞에 서 있던 아주머니에게 조심스럽게 길을 물었다. 영어가 완벽히 통하지는 않았지만, 내가 보여준 화면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더니 손짓으로 이쪽이 아니라 반대쪽이라고 설명해주었다. 거기까지면 충분했을 텐데, 아주머니는 가게를 잠시 비우고 나와 골목 입구까지 직접 나를 데려다주었다. 몇 분도 안 되는 거리였지만, 그 시간 동안 나는 이상하게 마음이 놓였다. 낯선 도시에서 누군가가 방향을 함께 맞춰준다는 느낌이 들었다. 마지막에 고개를 숙이며 “코쿤캅”이라고 말하자, 아주머니는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길을 잃는 것이 덜 두려워졌다. 모든 사람이 그런 도움을 주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 짧은 경험이 태국에 대한 인상을 바꾸었다. 친절은 거창한 행동이 아니라, 잠시 자신의 시간을 내어주는 것이라는 걸 그때 처음 체감했다.

말이 완벽하지 않아도 통했던 순간들

태국어를 완벽하게 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체류하다 보니, 사소한 상황에서도 긴장이 생겼다. 주문을 잘못하면 어쩌지, 계산이 틀리면 어떻게 설명하지, 병원에 가야 하면 의사 표현이 가능할까 같은 걱정들. 그런데 실제로 부딪혀보니 생각보다 많은 순간이 부드럽게 흘러갔다. 한 번은 로컬 식당에서 메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주문을 했다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음식이 나왔다. 당황한 표정을 지었는지, 직원이 다가와 천천히 설명해주었다. 내가 매운 음식을 잘 못 먹는다고 손짓으로 표현하자, 조금 덜 매운 메뉴를 추천해주었고, 이미 나온 음식은 일부만 계산해도 괜찮다고 말했다. 그 순간 나는 괜히 더 미안해졌다. 또 다른 날은 세탁소에서 동전이 부족해 곤란해졌을 때, 옆에 있던 학생이 먼저 다가와 동전을 바꿔주었다. 말은 거의 하지 않았지만, 웃으며 “마이펜라이”라고 말했다. 그 단어가 가진 의미를 그날 처음 제대로 느꼈다. 완벽한 언어가 없어도 서로의 의도를 이해하려는 태도가 있으면 충분하다는 걸 알게 됐다. 친절은 유창한 설명이 아니라, 상대를 안심시키는 표정에서 먼저 시작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복 속에서 쌓인 작은 인사들

한 달 이상 머물다 보니, 같은 사람을 여러 번 마주치게 됐다. 콘도 로비의 경비원, 매일 아침 과일을 파는 상인, 저녁마다 마주친 노점 주인. 처음에는 단순한 스침이었지만, 며칠이 지나자 눈이 마주칠 때마다 고개를 끄덕이게 됐다. 어느 날은 경비원이 내가 택배를 들고 있는 걸 보고 문을 먼저 열어주었고, 과일 가게 주인은 내가 자주 사는 과일을 기억해두었다. 그 관계가 깊다고 말하긴 어렵지만, 반복이 만들어낸 온기가 있었다. 한국에서는 빠르게 지나치는 장면이 여기서는 조금 더 오래 머무는 느낌이었다. 특히 스콜이 쏟아지던 날, 처마 밑에 함께 서 있던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공간을 나눠주던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말은 거의 없었지만, 서로 조금씩 자리를 내어주고, 비가 잦아들 때까지 함께 서 있었다. 그 순간 나는 혼자가 아니라는 기분이 들었다. 태국 사람들이 모두 친절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어느 나라든 다양한 사람이 존재한다. 하지만 내가 경험한 그 순간들 속에서 친절은 반복되었고, 그 반복이 인상을 굳혔다. 여행자의 눈에는 작은 장면일지 몰라도, 체류자의 마음에는 꽤 오래 남았다. 돌아오는 날, 공항에서 짐을 부치며 그 장면들이 떠올랐다. 거창한 도움보다, 사소한 배려가 더 또렷하게 기억에 남았다. 그리고 그 기억은 태국이라는 나라를 떠올릴 때마다 자연스럽게 따라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