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지에서는 생각보다 잘 통한다, 하지만 완벽하진 않다
태국에 처음 도착했을 때 가장 궁금했던 것 중 하나가 “영어만으로 얼마나 가능할까?”였다. 태국어를 거의 못 하는 상태였기 때문에 영어가 기본 도구였다. 공항에서는 큰 문제가 없었다. 입국 심사, 환전소, 공항 직원 응대는 비교적 자연스럽게 영어로 이루어졌다. 택시 기사에게 목적지를 보여주면, 간단한 영어로 확인 질문을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생각보다 괜찮네?”라는 인상이 강했다. 방콕 중심지, 특히 관광객이 많이 찾는 지역에서는 영어 메뉴가 기본으로 제공되는 식당이 많았고, 카페 직원들도 주문을 받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 호텔 리셉션에서는 대부분 유창한 영어가 가능했고, 투어 예약이나 일정 조정도 비교적 수월했다. 하지만 며칠 지나자 미묘한 경계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통한다”는 것과 “편하게 통한다”는 건 조금 달랐다. 직원이 영어를 이해하긴 하지만, 긴 문장이나 복잡한 설명은 어려워하는 경우가 있었다. 나도 말을 줄이고, 단어 위주로 말하게 됐다. “This one.”, “No spicy.”, “How much?” 같은 짧은 표현들이 반복되었다. 그리고 그게 오히려 효율적이었다. 관광지에서는 영어가 확실히 통한다. 하지만 완벽한 소통을 기대하면 어딘가 어긋난다. 대신 간단하고 명확한 표현을 쓰면 대부분의 상황은 무리 없이 지나간다. 그래서 나는 영어 실력을 시험하기보다는, 얼마나 단순하게 말할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됐다.
관광지를 벗어나면 영어의 체감 범위가 달라진다
관광 중심지를 조금만 벗어나면 공기가 달라진다. 로컬 식당, 동네 시장, 작은 세탁소 같은 공간에서는 영어 사용 빈도가 확실히 줄어든다. 처음에는 그 차이에 당황했다. 메뉴판이 태국어뿐인 식당에 들어가면 잠시 멈칫하게 된다. 영어로 물어보면 상대가 웃으며 고개를 젓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건, ‘아예 통하지 않는다’와 ‘말로만 통하지 않는다’는 다르다는 점이다. 태국에서는 몸짓과 표정이 꽤 강력한 언어다. 손가락으로 메뉴를 가리키고, 매운 걸 못 먹는다고 얼굴을 찡그리면 대부분 알아듣는다. 계산할 때도 휴대폰 계산기를 보여주거나 숫자를 적어주면 된다. 한 번은 시장에서 과일을 사려고 가격을 물었는데, 영어는 통하지 않았다. 대신 상인이 손가락으로 숫자를 보여주고, 나도 손가락으로 수량을 표현했다. 대화는 거의 없었지만 거래는 정확하게 끝났다. 그 순간 이상하게도 긴장이 풀렸다. 언어가 완벽하지 않아도 생활은 굴러간다는 걸 체감했기 때문이다. 물론 병원이나 은행처럼 복잡한 설명이 필요한 공간에서는 영어가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럴 때는 번역 앱을 사용하거나, 천천히 단어를 나누어 말해야 했다. 하지만 완전히 막히는 경우는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태국에서 영어는 ‘고급 소통 도구’라기보다 ‘기본 연결 장치’에 가까웠다. 깊은 대화는 어렵더라도, 필요한 정보 교환은 대부분 가능했다.
결국 중요한 건 영어 실력보다 태도였다
한 달 가까이 머물며 느낀 건, 영어의 범위는 생각보다 넓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태도라는 점이었다. 완벽한 문장을 말하지 못해도, 천천히 또박또박 말하면 상대도 집중해서 들어준다. 반대로 내가 조급하게 말하거나 짜증을 내면 분위기는 금세 굳는다. 태국에서는 말보다 표정이 먼저 전달되는 느낌이 강했다. 미소를 지으며 “Sorry”라고 말하면 상황이 부드러워지고, 고개를 숙이며 “Thank you”라고 하면 관계가 정리된다. 또 하나 흥미로웠던 건, 태국 사람들이 영어를 못한다고 해서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모르면 모른다고 솔직히 말하고, 대신 다른 직원을 불러오거나 번역기를 켜서 도와준다. 한 번은 콘도 로비에서 택배 문제로 설명이 필요했는데, 직원이 영어가 서툴렀다. 대신 다른 직원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해주었고, 결국 문제는 해결됐다. 그 과정에서 누구도 불편해하지 않았다. 오히려 웃으며 “OK, OK”를 반복했다. 그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영어는 태국에서 ‘완벽하게 통하는 언어’는 아니다. 하지만 ‘충분히 이어주는 언어’다. 그리고 그 범위는 생각보다 넓다. 관광지에서는 비교적 자유롭고, 로컬 지역에서는 몸짓과 단어 위주로 가능하다. 결국 영어가 어디까지 통하느냐는 질문보다, 내가 얼마나 유연하게 적응하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됐다. 언어는 도구일 뿐이고, 분위기는 태도가 만든다. 태국에서의 영어는 그래서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충분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