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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에서 한국 음식이 그리워졌던 순간

by Koriland 2026. 2. 14.

처음엔 괜찮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떠올랐다

태국에 도착했을 때는 솔직히 음식 걱정을 거의 하지 않았다. 오히려 반대였다. 길거리에서 파는 팟타이, 쏨땀, 똠얌꿍, 카오카무 같은 음식들이 더 궁금했고, 매 끼니가 기대됐다. 한국에서 먹던 음식은 잠시 잊어도 괜찮을 것 같았다. 실제로 초반 일주일은 전혀 아쉽지 않았다. 매운맛도 생각보다 잘 맞았고, 향신료 향도 금방 익숙해졌다. 편의점에서 파는 토스트나 즉석 음식도 생각보다 괜찮았고, 카페에서 파는 디저트도 다양했다. ‘나는 음식 적응이 빠른 편이구나’라고 스스로 생각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어느 날, 갑자기 김치가 떠올랐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다. 그냥 어느 로컬 식당에서 밥을 먹다가, 밥 옆에 아무 반찬도 없이 메인 메뉴 하나만 놓여 있는 걸 보면서였다. 태국 음식은 보통 한 접시에 완성형으로 나온다. 반찬을 여러 개 나눠 먹는 구조가 아니다. 그때 문득, 한국에서 밥상에 기본처럼 올라오던 김치, 나물, 국이 생각났다. 한 숟가락 밥을 먹고, 그다음 김치를 집어 먹고, 다시 국을 한 모금 마시던 리듬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 순간은 아주 짧았지만 묘하게 오래 남았다. 나는 그날 저녁 콘도로 돌아와 휴대폰으로 ‘방콕 한식당’을 검색했다. 아직 당장 먹어야겠다는 건 아니었지만, 그냥 메뉴 사진을 보고 싶었다. 화면 속에 보이는 김치찌개, 된장찌개, 제육볶음 사진을 한참 바라봤다. 그때 처음으로 깨달았다. 음식은 단순히 배를 채우는 게 아니라, 익숙함을 확인하는 장치였다는 걸.

매운 음식은 많았지만, 그 맛은 달랐다

태국 음식도 맵다. 오히려 한국보다 더 강하게 매운 경우도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한국의 매운맛이 그리워질 때가 있었다. 태국의 매운맛은 고추의 날카로운 매움과 향신료의 향이 함께 온다. 처음에는 그 자극이 신선하고 좋았다. 하지만 며칠, 몇 주가 지나자 그 매움이 익숙해지면서도 다른 매움이 떠올랐다. 고추장 베이스의 묵직한 매움, 고춧가루가 들어간 찌개의 깊은 매움, 김치의 시원한 매움. 태국에서 혼자 식당에 앉아 밥을 먹다가도, 갑자기 삼겹살이 구워지는 냄새가 상상 속에서 떠오른 적이 있다. 특히 저녁 시간이 그랬다. 태국에서는 노점에서 간단한 음식을 사 먹거나, 한 그릇 요리로 식사를 해결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저녁이 종종 ‘함께 구워 먹는 시간’이었다. 고기를 뒤집고, 상추에 싸 먹고, 된장찌개를 곁들여 먹던 기억이 따라왔다. 태국에서 한식당을 찾은 날이 있었다. 가격은 한국보다 비쌌다. 그래도 김치찌개를 주문했다. 김치찌개가 테이블에 놓였을 때 나는 잠시 멈췄다. 국물에서 올라오는 익숙한 냄새가 코끝에 닿았다. 한 숟가락 떠먹었을 때, 맛이 완벽히 한국과 같진 않았지만 충분히 닮아 있었다. 그 순간 마음이 묘하게 안정됐다. 마치 내가 완전히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는 증거를 확인한 느낌이었다. 태국 음식이 싫어서가 아니었다. 다만, 한동안 잊고 지냈던 맛이 갑자기 선명해졌을 뿐이었다.

음식이 아니라, 그 음식을 먹던 상황이 그리웠다

태국에서 한국 음식이 그리워졌던 순간을 돌이켜보면, 사실 음식 자체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 음식을 먹던 상황이 함께 떠올랐다. 혼자 콘도 방 안에서 컵라면을 먹던 날이 있었다. 한국에서 가져온 컵라면을 마지막까지 아껴두다가, 유난히 기분이 처지는 날에 꺼냈다. 뜨거운 물을 붓고 기다리는 몇 분 동안, 이상하게 마음이 복잡했다. 뚜껑을 열었을 때 나는 갑자기 한국에서 밤늦게 친구와 편의점 앞에 앉아 라면을 먹던 장면이 떠올랐다. 회사 근처 식당에서 점심시간에 줄 서서 먹던 김치찌개, 가족이 모여 앉아 먹던 집밥. 태국에서는 혼자 먹는 경우가 많았고, 그게 불편하진 않았지만 어느 순간은 조용했다. 한국 음식이 그리워졌다는 건, 그 맛을 둘러싸고 있던 사람들과 공기가 함께 떠올랐다는 뜻이었다. 태국의 밤거리는 활기찼지만, 그 속에서 나는 종종 혼자였다. 그 고요함 속에서 한국 음식은 하나의 연결선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그리움이 생길 때마다 일부러 한식당을 찾기보다, 오히려 그 감정을 그대로 두기도 했다. 그리워한다는 건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 잊지 않았다는 증거 같았기 때문이다. 태국에서의 시간은 분명 즐거웠고, 음식도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그 사이사이에 한국 음식이 떠오르던 순간들은 이상하게도 따뜻하게 남아 있다. 그리움은 불편함이 아니라, 내가 두 나라 사이에 서 있다는 걸 알려주는 신호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