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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에서 대화 없이도 연결되는 순간들

by Koriland 2026. 2. 14.

복장은 단순한 규칙이 아니라 ‘태도’에 가깝다

태국 사원을 처음 방문했을 때 나는 솔직히 관광지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사진으로 보던 황금빛 탑과 화려한 장식, 높이 솟은 첨탑들이 눈에 들어왔고, 그 앞에서 사진을 찍는 장면만 떠올렸다. 그래서 평소 여행하던 차림 그대로 반바지와 반팔을 입고 갔다. 입구에 도착했을 때 분위기가 생각보다 차분하다는 걸 느꼈다. 관광객은 많았지만, 그 사이에 현지인들이 향을 피우고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런데 입구에서 직원이 나를 멈춰 세웠다. 무릎이 드러나는 복장은 안 된다는 안내였다. 그 순간 괜히 민망해졌다. 급히 근처에서 긴 천을 빌려 허리에 둘렀지만, 마음 한쪽이 불편했다. 단순히 규정을 몰라서가 아니라, 내가 이 공간을 너무 가볍게 생각했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후로는 사원에 갈 때 긴 바지나 무릎 아래로 내려오는 옷을 꼭 챙기게 됐다. 어깨가 드러나는 옷도 피했다. 더운 날씨라 가볍게 입고 싶었지만, 그 공간에 들어서는 순간 공기의 결이 달라진다는 걸 알게 됐다. 사원은 관광객에게는 명소일 수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일상의 기도 공간이다. 복장은 단순히 몸을 가리는 문제가 아니라, 그 공간을 대하는 마음가짐을 보여주는 요소처럼 느껴졌다. 옷을 조금 더 신경 쓰는 것만으로도 발걸음이 자연스럽게 느려졌다. 시끄럽게 웃거나 급하게 움직이기보다, 조용히 주변을 살피게 됐다. 나중에는 오히려 긴 바지를 입고 들어서는 것이 마음을 차분하게 만드는 장치처럼 느껴졌다.

사진을 찍기 전에 먼저 배워야 할 것들

사원에 들어서면 누구나 카메라를 먼저 꺼내게 된다. 나 역시 그랬다. 금빛 불상과 정교한 벽화,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지붕은 정말 눈을 사로잡는다. 처음 방문했을 때 나는 불상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려다 주변의 시선을 느낀 적이 있다. 신발을 벗어야 하는 구역을 지나 들어갔는데, 무심코 발을 불상 쪽으로 향하게 하고 앉아 있었다. 그때 옆에 있던 현지인이 조용히 손짓으로 자세를 바꿔주었다. 그 순간 얼굴이 조금 달아올랐다. 태국에서는 발이 가장 낮은 부분으로 여겨지고, 발바닥을 불상이나 사람에게 향하는 것을 무례하게 본다는 걸 그때 처음 실감했다. 또 하나는 불상보다 높은 위치에 올라서지 않는 것, 장난스러운 포즈를 취하지 않는 것 같은 기본적인 예절이었다. 가이드북에 짧게 적혀 있던 문장이 그날은 훨씬 무겁게 느껴졌다. 사원 안에서는 자연스럽게 목소리 톤이 낮아진다. 누군가는 기도를 하고 있고, 누군가는 조용히 앉아 있다. 그 흐름을 방해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됐다. 이후로는 사진을 찍기 전에 먼저 주변을 살폈다.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보고, 그 분위기에 맞춰 움직였다. 사진 몇 장보다, 그 공간에서의 태도가 더 오래 남는다는 걸 배웠다. 불상 앞에 서면 괜히 고개를 숙이게 되고, 걸음이 조심스러워진다. 그 변화는 누가 강요해서가 아니라, 공간이 스스로 요구하는 분위기 때문이었다.

잠시 앉아 있는 시간이 남기는 것

사원을 방문할 때마다 예전에는 빠르게 둘러보고 나오는 편이었다. 볼 것은 많고, 일정은 촘촘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날은 일부러 아무 계획 없이 사원 안 벤치에 앉아 있었다. 스콜이 지나간 뒤라 공기가 약간 습했고, 나무 사이로 바람이 천천히 불었다. 작은 종이 흔들리며 맑은 소리를 냈고, 멀리서 스님의 발걸음이 조용히 들렸다. 관광객들은 여전히 사진을 찍고 있었지만, 그 사이에 현지인 한 명이 향을 꽂고 두 손을 모으는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그 모습은 화려하지 않았지만 오래 남았다. 사원은 단순히 건축물이 아니라, 누군가의 하루와 이어져 있는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사원에 가면 잠시라도 앉아 있는 시간을 만들었다. 스마트폰을 잠시 내려두고, 주변 소리를 듣고, 햇빛이 바닥에 떨어지는 모양을 바라봤다. 그 짧은 시간이 여행의 밀도를 바꿔놓았다. 태국 사원에 가기 전에 알았으면 좋았을 것은 단순한 복장 규정이나 사진 예절만이 아니다. 그 공간에서 잠시 멈출 수 있다는 사실이다.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는 것, 조용히 머물러도 괜찮다는 것. 그 여유가 사원의 본질에 조금 더 가까워지는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은 보통 많이 보고 많이 찍는 것으로 기억되지만, 사원에서의 기억은 오히려 조용한 순간들로 남는다. 금빛 장식보다, 햇빛 아래 서 있던 한 사람의 뒷모습이 더 또렷하게 떠오른다. 그리고 그 장면은 시간이 지나도 쉽게 흐려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