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어색했고, 시선이 신경 쓰였다
태국에 도착한 첫 주에는 혼자 밥을 먹는 시간이 묘하게 길게 느껴졌다. 한국에서도 혼밥을 안 해본 건 아니었지만, 그건 대개 바쁜 점심시간이거나 잠깐 끼니를 해결하는 순간이었다. 목적이 분명했다. 빨리 먹고 다음 일정으로 넘어가는 구조였다. 그런데 태국에서는 그 ‘다음 일정’이 그리 급하지 않았다. 그래서 오히려 혼자 앉아 있는 시간이 도드라졌다. 로컬 식당에 들어가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있으면, 주변 테이블은 가족이나 친구 단위였다. 나는 그 사이에서 혼자였다. 처음 며칠은 괜히 휴대폰을 오래 들여다봤다. 아무것도 안 하고 앉아 있기엔 어색했다. 음식이 나오기까지의 몇 분이 길게 느껴졌다. 한국에서는 혼자 먹는 게 점점 자연스러워졌다고 생각했는데, 낯선 나라에서는 다시 초보가 된 느낌이었다. 주문할 때도 긴장이 있었다. 영어로 간단히 말하면 대부분 통했지만, 혹시 못 알아듣지 않을까 걱정했다. 매운 걸 못 먹는다고 설명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래서 메뉴판의 사진을 가리키며 주문하고, 계산할 때는 미리 돈을 꺼내 쥐고 있었다. 밥을 먹는 동안은 이상하게 주변 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 태국어로 빠르게 오가는 대화, 숟가락 부딪히는 소리, 오토바이 지나가는 소리. 그 속에서 나는 말이 없었다. 혼자 먹는 시간이 외로웠다고 말하긴 어렵지만, 분명히 낯설었다. 그 낯섦이 몇 번 반복되면서 조금씩 형태를 바꾸기 시작했다.
혼자라는 사실이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어졌다
태국에서 몇 주를 보내면서, 혼자 밥을 먹는 시간은 더 이상 ‘특별한 상황’이 아니게 됐다. 오히려 가장 안정적인 시간처럼 느껴졌다. 이유를 정확히 설명하긴 어렵지만, 태국에서는 혼자 식사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노점 앞에 혼자 서서 국수를 먹는 사람, 카페 구석에서 혼자 밥을 먹는 사람, 편의점 앞 테이블에 혼자 앉아 있는 사람. 그 장면들이 반복되다 보니 나도 자연스럽게 섞였다. 어느 날은 로컬 시장 안 식당에 들어가 자리를 잡았는데, 직원이 아무렇지 않게 물을 가져다주고 주문을 받았다. 그 태도에 특별함이 없었다. ‘왜 혼자냐’는 시선도 없었다. 그때 처음으로 마음이 놓였다. 혼자라는 걸 설명할 필요가 없다는 느낌. 한국에서는 혼밥이 자연스러워졌다고 해도, 여전히 ‘혼자 왔어요’라는 말을 해야 하는 순간이 있다. 하지만 태국에서는 그런 말이 굳이 필요 없었다. 그냥 앉으면 그걸로 충분했다. 음식이 나오기까지 기다리는 시간도 달라졌다. 휴대폰을 보지 않고 그냥 앉아 있어도 어색하지 않았다. 주변을 관찰하게 됐다. 가족끼리 나눠 먹는 모습, 아이가 웃으며 음식을 흘리는 장면, 친구들끼리 사진을 찍는 모습. 나는 그 장면을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함께 있었다. 혼자 먹는 시간이 ‘외로운 시간’에서 ‘관찰하는 시간’으로 바뀌었다. 혼자이기 때문에 오히려 주변을 더 선명하게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게 이상하게 좋았다.
결국 밥을 먹는 시간이 생각하는 시간이 되었다
태국에서 혼자 밥을 먹는 시간이 가장 크게 달라진 건, 그 시간이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이 되었을 때였다. 한국에서는 밥을 먹으며 대화를 하거나, 뉴스를 보거나, 다음 일을 고민하는 경우가 많았다. 밥은 과정이었고, 대화가 중심이었다. 그런데 태국에서는 혼자 밥을 먹는 날이 많았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생각이 따라왔다. 오늘 하루 어땠는지, 앞으로 뭘 할지, 지금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 음식의 맛을 천천히 느끼는 순간도 늘어났다. 맵고 달고 짠 맛이 입 안에서 퍼질 때, 그 자극을 온전히 느꼈다.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지 않기 때문에, 내 감각이 더 또렷해졌다. 한 번은 저녁에 길거리에서 카오카무를 사서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먹은 적이 있다. 주변은 시끄러웠지만, 이상하게도 내 안은 조용했다. 그날 나는 하루 종일 별다른 일을 하지 않았는데, 밥을 먹으며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 먹는 시간이 불편하지 않다는 사실이 오히려 위로가 됐다. 혼자여도 충분히 하루를 보낼 수 있다는 확인 같은 느낌이었다. 태국에서의 혼밥은 점점 익숙해졌고, 나중에는 일부러 그 시간을 기다리기도 했다. 누구의 눈치를 보지 않고, 말하지 않아도 되고, 그저 앉아서 음식을 먹는 시간. 그 단순한 시간이 태국에서는 조금 더 길게, 조금 더 부드럽게 흘렀다. 그리고 그 흐름 속에서 나는 혼자 있는 자신을 덜 낯설게 느끼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