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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에서 혼자 보내는 하루 루틴

by Koriland 2026. 2. 14.

아침은 조용하게 시작되고, 천천히 밖으로 나간다

태국에서 혼자 지내다 보면 아침이 가장 조용하다. 한국에서는 아침부터 소리가 많다. 출근 준비하는 소리, 엘리베이터 문 닫히는 소리, 자동차 시동 소리. 그런데 태국의 아침은 조금 다르게 느껴진다. 내가 머물던 콘도에서는 복도가 비교적 고요했고, 로비에는 이미 경비원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지만 분위기는 분주하지 않았다. 창문을 열면 습기가 먼저 들어온다. 아직 햇빛이 완전히 강해지기 전이라 공기가 묘하게 부드럽다. 나는 대부분 알람을 여러 번 맞춰두지 않는다. 굳이 서두를 일이 없기 때문이다. 눈을 뜨면 침대에 조금 더 누워 있다가, 천천히 몸을 일으킨다. 휴대폰을 확인하고, 밤사이 온 메시지를 훑어보고, 커튼을 걷는다. 아침에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커피를 마시는 것이다. 콘도 아래 편의점에서 사온 캔커피를 마실 때도 있고, 길 건너 카페에 가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할 때도 있다. 혼자라서 말은 많지 않다. 계산대에서 짧은 영어, 혹은 서툰 태국어 한 마디가 전부다. “코쿤캅.” 그 짧은 인사만으로도 하루가 시작되는 느낌이 든다. 카페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면 이미 오토바이들이 도로를 채우고 있다. 학생들은 교복을 입고 지나가고, 노점상은 재료를 정리한다. 나는 그 풍경을 보면서도 아직 어딘가 ‘외부인’이다. 하지만 반복되다 보니 조금씩 그 풍경 안에 섞이는 느낌이 생긴다. 아침은 빠르게 흘러가지 않는다. 할 일이 급하지 않으면 굳이 일정을 촘촘히 짜지 않는다. 오늘은 어디를 갈지, 그냥 생각만 한다. 혼자 있는 아침은 말이 적지만, 대신 생각이 많다. 한국에서는 아침이 곧 ‘전쟁 준비’였다면, 태국에서의 아침은 ‘하루를 관찰하는 시간’에 가깝다. 그 차이가 하루 전체의 속도를 바꾼다.

한낮은 더위에 맞춰 흘러가고, 계획은 유연해진다

태국에서 혼자 보내는 하루는 한낮이 되면 확실히 달라진다. 햇빛이 강해지고, 공기가 무거워진다. 이 시간대에 무리하게 돌아다니면 금세 지친다. 그래서 나는 자연스럽게 실내 공간으로 들어간다. 쇼핑몰, 카페, 혹은 콘도 안 헬스장. 혼자라서 약속 시간에 쫓길 필요도 없다. 더우면 쉬고, 배고프면 근처 식당에 들어간다. 로컬 식당에 앉아 혼자 밥을 먹는 건 처음엔 조금 어색했다. 하지만 며칠 지나자 아무도 나를 이상하게 보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태국에서는 혼자 식사하는 사람이 드물지 않다. 나는 메뉴판을 보고, 모르면 사진을 가리킨다. 음식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동안 휴대폰을 보거나 그냥 가만히 앉아 있다. 더위 때문에 움직임이 줄어들면 생각도 느려진다. 계획은 점점 유연해진다. 원래 가려던 장소를 취소하고, 그냥 눈앞에 있는 카페에 들어가기도 한다. 혼자이기 때문에 가능한 선택이다. 누군가와 함께라면 일정을 맞추고 합의해야 하지만, 혼자일 때는 즉흥이 쉽다. 대신 외로움이 전혀 없다고는 말할 수 없다. 특히 한낮의 정적 속에서는 생각이 깊어진다. 한국에 있는 사람들, 내가 떠나온 일상, 앞으로의 계획. 하지만 그 생각이 무겁게 느껴지진 않는다. 오히려 태국의 더위가 생각을 천천히 식혀준다. 혼자 보내는 시간은 때로 길게 느껴지지만, 동시에 금방 지나간다. 쇼핑몰 안에서 몇 시간을 보내도 크게 할 일을 한 건 없지만, 하루의 일부가 자연스럽게 채워진다. 태국에서의 한낮은 ‘해야 할 것’이 아니라 ‘흘러가야 할 것’처럼 느껴진다.

저녁이 되면 혼자의 시간이 가장 선명해진다

태국에서 혼자 보내는 하루의 가장 선명한 순간은 저녁이다. 해가 지면 공기가 조금 가벼워진다. 사람들은 밖으로 나온다. 노점은 불을 밝히고, 길거리 음식 냄새가 퍼진다. 나는 산책을 하듯 거리를 걷는다. 특별한 목적 없이 걷는 시간이 가장 좋다. 음악을 들을 때도 있고, 그냥 소리만 들을 때도 있다. 오토바이 지나가는 소리, 사람들 웃음소리, 멀리서 들리는 태국어 방송. 혼자이기 때문에 대화는 없지만, 대신 주변 소리가 더 또렷하다. 야시장에 들러 간단한 음식을 사기도 한다. 플라스틱 의자에 혼자 앉아 음식을 먹으며 주변을 본다. 가족 단위 손님, 친구끼리 웃는 학생들, 연인들. 그들 사이에 나는 조용히 끼어 있다. 완전히 속하지도, 완전히 떨어져 있지도 않은 위치. 그 중간 지점이 이상하게 편하다. 콘도로 돌아오면 로비는 조금 더 조용하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을 본다. 오늘 하루 특별한 사건은 없었지만, 분명히 하루를 보냈다. 방 안에 들어와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누우면, 창밖에서 간간히 들려오는 소리가 하루의 마지막 배경음이 된다. 혼자 보내는 하루는 화려하지 않다. 하지만 오히려 그래서 선명하다. 누군가와 함께였다면 대화 속에 묻혔을 장면들이, 혼자일 때는 또렷하게 남는다. 태국에서 혼자 보내는 하루는 조용하지만 비어 있지 않다. 느리지만 지루하지 않다. 나는 그 하루들을 반복하면서, 혼자 있는 시간이 두렵지 않다는 걸 배웠다. 그리고 그 감각은 한국으로 돌아와도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