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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타야 해변에서 본 태국 사람들의 여유

by Koriland 2025. 8. 23.

바다와 함께 시작된 아침의 느린 리듬

 파타야의 아침은 소음이 아니라 파도소리로 시작된다. 해안도로에 햇빛이 번지기 전, 모래사장에는 이미 현지인들이 하나둘 자리 잡는다. 어떤 이는 맨발로 모래를 밟으며 천천히 걷고, 어떤 이는 요가 매트를 펴고 숨을 고른다. 해변 근처 사원에서 탁발을 마친 승려가 지나가면 사람들은 잠시 고개를 숙여 인사한다. 어시장에서 갓 돌아온 소금기 어린 바람이 코끝을 스치고, 바닷새는 낮게 선회하며 모래 위로 그림자를 떨어뜨린다. 나는 습기가 서린 공기를 깊게 들이마시며 한 발 한 발을 의식적으로 내디뎠다. 발바닥에 닿는 모래의 온기는 미지근했고, 파도가 한번 훑고 간 자리에는 유리처럼 반짝이는 조개껍데기와 가느다란 해초가 남아 있었다. 산책로에서 마주친 중년 부부는 작은 라디오로 오래된 태국 노래를 틀어 놓고 서로의 보폭을 맞췄다. 파라솔을 펼치는 상인들의 손놀림은 서두름이 없었다. 의자 다리를 모래 속에 단단히 고정하고, 얼음통을 채우고, 오늘 쓸 레몬을 조용히 닦아 둔다. 몇몇 젊은이는 바다로 들어가 해변 배구 네트를 세우고, 아이들은 모래성의 기초를 다지며 물이 닿는 경계를 계산하듯 손가락으로 선을 긋는다. 한국에서라면 해변은 ‘휴가’라는 낱말과 함께 번개처럼 스쳐 지나가곤 했지만, 여기서는 ‘루틴’에 가깝다. 아침마다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몸을 풀고 차를 한 잔 마시며 서로 안부를 묻는 이들이 있다. 해가 조금 더 올라오자 자원봉사 단체가 쓰레기 집게를 들고 나타났다. 모래 사이를 조심스럽게 훑으며 작은 포장지 하나도 놓치지 않고 주워 담는다. 나는 그 모습에서 이 도시가 바다를 소비하는 대신 돌보며 산다는 사실을 배웠다. 여유는 단지 느리게 걷는 속도가 아니라, 자신이 기대어 사는 장소를 아끼는 태도라는 것을.

정오의 햇살 속에서 배우는 ‘느리게 즐기기’

 태양이 정수리 위로 올라오면 파타야의 해변은 또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노점의 파라솔이 촘촘하게 그늘을 드리우고, 코코넛을 갈아 넣은 차가운 음료와 망고, 파인애플이 먹기 좋게 손질되어 한쪽에 가지런히 놓인다. 해산물 구이 냄새가 바닷바람을 타고 흐르고, 달콤한 소스와 라임즙의 향기가 뒤섞여 식욕을 부른다. 관광객들이 제트스키를 타고 하얀 물보라를 일으키는 동안 현지 가족들은 돗자리를 펴고 천천히 식사를 시작한다. 얼음을 담은 잔에 맥주를 나눠 붓고, 매운 해산물 샐러드를 조금씩 덜어 먹으며 이야기를 이어 간다. 누군가는 바다에 발만 담근 채 책을 읽고, 누군가는 파라솔 아래에서 낮잠을 청한다. 나는 처음에 이 느린 시간에 어색했다. “무언가를 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자꾸 떠오르곤 했다. 하지만 곁을 지나는 아주머니가 “뜨거우면 쉬고, 배가 고프면 먹고, 졸리면 잠깐 자면 된다”고 말하며 웃자, 그 말이 해답이 되었다. 시간을 꽉 채우려는 습관을 잠시 내려놓고 파도 소리에 몸을 맡기자 해변의 소음이 음악처럼 들리기 시작했다. 바다 위에 둥둥 떠 있는 바나나보트의 환호, 아이스크림 카트의 종소리, 멀리서 들려오는 기타 선율, 그리고 파라솔 천을 스치는 바람의 얇은 진동까지. 해변에서 만난 대학생들은 시험이 끝났다는 이유만으로 하루 종일 모래 위에 누워 하늘만 바라봤다. “계획이 없어서 행복하다”는 그들의 농담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한국에서의 휴식은 종종 ‘해야 할 일’의 또 다른 목록이 되곤 한다. 반면 이곳의 휴식은 ‘하지 않아도 되는 권리’를 확인하는 시간에 가깝다. 파타야의 정오는 그렇게 나에게 ‘느리게 즐기기’의 기술을 가르쳤다. 온몸으로 햇살을 받되 그늘을 알고, 목이 마르면 천천히 마시고, 대화가 끊기면 침묵 자체를 하나의 이야기로 받아들이는 법을.

석양과 함께 완성되는 하루의 배움

 해가 서서히 기울 무렵, 바다는 복숭아색과 자주색이 겹쳐진 물감처럼 변한다. 사람들은 모래 위로 더 가까이 다가가 자리를 잡고, 어린아이들은 낮 동안 만들던 모래성의 탑을 마지막으로 다듬는다. 노점의 등불이 하나둘 켜지고, 거리 공연을 준비하는 청년이 불쇼 장비를 점검한다. 바닷물에 스노클링 장비를 씻던 아버지는 아이의 손을 잡고 파도 높이를 계산해 준다. 파라솔을 정리하던 상인은 남은 쓰레기를 다시 한 번 확인하고, 먹다 남은 음식을 stray cat들과 나눠 먹는 장면도 종종 보인다. 석양이 수평선을 넘어갈 때, 해변은 잠깐 조용해진다. 모두가 같은 곳을 바라보며 말수가 줄어든다. 나는 그 순간이 파타야가 보여주는 여유의 정점이라고 느꼈다. 삶의 리듬을 바다가 이끌고, 사람들은 그 리듬에 자신을 맞춘다. 한국으로 돌아온 뒤에도 나는 종종 그날의 석양을 떠올린다. 업무 알림이 몰려오는 저녁에도 잠깐 창문을 열고 바람을 맞으며 호흡을 길게 가져간다. 파타야에서 배운 가장 큰 기술은 ‘멈춤’이었다. 서두르지 않고, 비교하지 않고, 지금 여기의 감각을 한 장씩 넘기듯 음미하는 습관. 다음에 다시 파타야를 찾게 된다면 나는 또다시 아침의 조용한 산책로에서 시작해, 점심의 게으른 그늘에 잠시 누웠다가, 해질녘 모래가 식어 가는 온도를 손바닥으로 느낄 것이다. 그리고 모래 위에 짧게 적어 둘 한 문장을 이미 마음속에 정해 두었다. “여유는 목적지가 아니라, 매 순간 선택하는 속도다.” 그 문장을 파도에 맡겨 지워 보낼 때쯤, 나는 다시 태국 사람들이 사는 법을 조금 더 닮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