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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택시비 흥정에서 배운 교훈

by Koriland 2025. 8. 23.

공항에서 맞닥뜨린 첫 흥정과 준비

 태국에 처음 도착했을 때 나는 공항 자동문을 나서는 순간부터 ‘가격’이 말을 거는 도시와 마주했다. 길게 이어진 택시 승강장, 형형색색의 차량 사이로 기사들이 다가와 목적지를 묻고는 미터 대신 정액을 자연스럽게 제시했다. 한국의 감각으로는 낯설고도 불편했다. 우리는 보통 미터기가 켜지는 순간부터 거래가 시작된다고 믿는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합의된 가격’이 먼저 나오고, 그다음에 이동이 따라붙는 일이 드물지 않았다. 나는 여행 초보의 순진함으로 고개를 끄덕였다가 곧 후회했다. 숙소에 도착하니 짐을 내리기도 전에 계산서처럼 불쑥 내밀어진 금액이 예상보다 훨씬 컸던 것이다. 방 안에 들어와 에어컨 바람을 맞으며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지금 불편했던 건 돈 때문만이 아니라, 기준 없이 결정한 나의 태도 때문이 아닐까?’ 그날 밤, 도시의 소음이 잦아들 때까지 침대 위에서 뒤척이며 작은 노트를 꺼내 세 문장을 적었다. “미터 켜 주세요.” “미터가 어렵다면 다른 차를 이용하겠습니다.” “앱 요금이 이 정도입니다.” 단호하지만 예의 있는 표현을 연습하니 마음이 조금 편안해졌다. 다음 날 아침, 공항과 시내를 오가는 노란 초록 택시들이 줄지어 서 있는 모습을 다시 바라보며 나는 ‘오늘은 어제와 다르게 시작하자’고 다짐했다. 여행의 첫 단추는 목적지보다도 ‘이동의 방식’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으로 이해했다. 나의 역할은 싸우는 손님이 아니라, 기준을 가진 승객이 되는 것이었다. 그 기준은 단순했다. 가격을 깎는 게임이 아니라 ‘공정하게, 그리고 투명하게’ 이동하는 것, 불편하면 다른 선택지를 택하는 것,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도 미소를 잃지 않는 것이다. 공항 라운지 옆 안내판을 다시 살펴보며 공항철도와 시내철도의 환승표도 메모했다. 차를 탈지, 철도를 탈지 선택지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협상력은 커졌다. 나는 전날 지출을 적은 영수증 사진을 확대해 비교했고, 포럼에서 본 ‘미터+톨비+서차지’라는 단어들을 옮겨 적었다. 기사와 대화를 시작하기 전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을 돌렸다. “톨게이트를 이용하면 시간을 줄일 수 있으니 비용은 별도죠? 합의한 금액에 포함할까요, 아니면 따로 낼까요?” 이런 질문을 미리 준비하면 목소리가 흔들리지 않는다. 언어가 완벽하지 않아도 문장의 구조가 분명하면 상대는 나를 ‘정보를 갖춘 손님’으로 대한다. 나는 작은 계산기를 꺼내 숫자를 입력하고, 손가락으로 다시 확인해 보여 주는 제스처를 연습했다. 고개를 끄덕이는 타이밍, 웃으며 거절하는 표정까지. 흥정의 대부분은 말이 아니라 태도라는 것도 그때 배웠다.

원칙을 세우고 혜안으로 흥정에 임하기

 그다음 이용부터는 절차를 만들었다. 택시 문이 열리면 먼저 인사하고 목적지를 또박또박 말한 뒤, 곧바로 미터 버튼을 가리키며 요청한다. 기사가 손사래를 치면 웃음을 잃지 않은 채 가격을 재확인하고, 필요하면 휴대폰의 지도와 앱 예상 요금을 보여 준다. “정말 미터가 어렵다면 저는 앱을 부를게요.” 이 말은 협박이 아니라 기준의 선언이었다. 숫자는 유연하게 움직일지 몰라도 원칙은 단단해야 한다. 한 번은 야간 폭우로 택시가 모자라던 날, 기사님이 정액을 제안했다. 나는 고속도로 통행료와 짐 비용을 포함한 총액을 미리 합의하자고 제안했고, 스마트폰 화면으로 근사치를 함께 계산했다. 결과는 깔끔했다. 처음 제시액보다 낮은 금액, 그리고 서로가 납득하는 조건. 또 다른 날에는 호텔 앞에서 ‘현금만 가능’이라며 높은 금액을 요구하는 경우를 만났다. 그때는 밝게 손을 흔들고 한 발짝 물러섰다. 거절은 무례가 아니라 선택의 권리다. 잠시 후 다른 차량이 멈췄고, 첫마디에 미터 버튼이 눌렸다. 짧은 “캅쿤 크랍”과 함께 탑승하자 차 안의 공기가 달라졌다. 긴장 대신 신뢰, 계산 대신 대화가 자리했다. 운전석과 뒷좌석 사이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합의가 생겼다. ‘우리는 같은 규칙을 따른다.’ 이 간단한 합의가 이동을 편안하게 만들었고, 도착 후 팁을 건넬 때의 표정도 서로 한결 부드러웠다. 우천 시에는 차창에 김이 서려 바깥이 흐릿했고, 운전기사는 와이퍼의 박자에 맞춰 조심스럽게 속도를 조절했다. 그런 상황에서 무리한 깎기는 서로에게 좋지 않다는 것도 체감했다. 대신 나는 ‘시간 절약’에 가치를 두고 톨비를 추가 부담하는 조건으로 빠른 경로를 택했다. 한 번은 러시 아워에 소음이 가득한 사톤 로드에서 길이 막히자, 기사가 골목길을 선택했다. 그때 나는 휴대폰 지도를 돌려 보이며 우회 시간을 함께 계산했다. 계기판 위, 작은 미터기 숫자가 분침처럼 올라가는 동안 우리는 시내 축제 이야기와 좋아하는 길거리 음식 이야기를 나눴다. 상대의 일을 이해하려 애쓰면 분위기는 자연스레 협상이 아니라 협력으로 바뀐다.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나는 합의한 금액과 소액의 팁을 건넸고, 그는 감사 인사를 태국어와 영어를 섞어 또박또박 건넸다. 차문이 닫힐 때, 얼굴에는 둘 다 같은 미소가 남았다. 또 한 번은 기사님이 ‘교통단속이 심해 미터를 쓰면 늦어진다’고 설득했지만, 나는 웃으며 카드 결제 영수증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그 말 한마디에 분위기는 곧 정리되었고, 그는 미터 버튼을 눌렀다. 명확한 사유를 가진 요구는 불필요한 실랑이를 줄인다. 때때로 상황이 맞지 않으면 과감히 하차를 선택했다. 걷는 시간이 조금 늘어나도, 기준을 잃는 것보다는 낫기 때문이다.

가격을 넘어선 태도, 그리고 여행의 교훈

 며칠간의 시행착오 끝에 내가 얻은 가장 큰 배움은 ‘가격’이 아니라 ‘태도’였다. 나는 세 가지를 지켰다. 첫째, 감정의 속도를 늦춘다. 서두르면 목소리가 높아지고, 목소리가 높아지면 정보가 흐려진다. 둘째, 비교의 기준을 준비한다. 앱 요금, 대중교통 환승 시간, 걸어서 이동 가능한 거리 같은 선택지를 머릿속에 세워 두면 숫자 앞에서 당황하지 않는다. 셋째, 상대의 일도 존중한다. 비나 폭염처럼 수요가 몰리는 시간에는 기사에게도 비용과 리스크가 커진다. 그 현실을 이해한 채 협상하면 싸움이 아니라 합의가 된다. 어떤 날은 내가 제시한 금액이 더 낮았고, 어떤 날은 상대의 사정을 받아들여 조금 더 지불했다. 중요한 건 균형이었다. 여행의 만족감은 몇 바트를 아꼈느냐가 아니라, 스스로 정한 기준으로 이동을 마쳤다는 확신에서 왔다. 이제 택시 문이 열릴 때마다 나는 마음속으로 세 단어를 되뇌인다. “미소, 기준, 선택.” 미소는 대화를 부르고, 기준은 흔들림을 막고, 선택은 언제든 더 나은 길로 옮겨갈 자유를 준다. 흥정은 위험한 줄다리기가 아니라 관계를 맺는 방식이다. 처음의 나는 도시의 규칙에 끌려다녔지만, 지금의 나는 나만의 리듬으로 걸음을 맞춘다. 다음 번 방콕의 밤에도, 나는 같은 문장으로 시작할 것이다. “미터 켜 주세요.” 그리고 목적지에 내릴 때, 오늘의 이동이 공정했고 서로에게 예의 바르다고 느껴진다면, 그게 바로 내가 태국 택시비 흥정에서 배운 가장 값진 교훈이다. 나는 이 경험을 시장과 숙소 예약에도 그대로 확장했다. 기념품 상점에서 가격표가 없는 물건을 고를 때 기준 가격을 묻고, 현금과 카드 수수료 차이를 비교한 뒤 선택했다. 숙소에서는 체크인 전에 보증금과 포함 항목을 확인했고, 추가 청소비나 늦은 체크아웃 요금처럼 애매한 부분을 미리 명확히 했다. 협상은 언제나 ‘상대의 시간과 나의 시간을 동시에 아끼는 기술’이어야 한다는 원칙이 자리 잡았다. 태국 친구는 내 방식을 듣고 엄지를 들어 보이며 말했다. “너, 드디어 현지인 다 됐다.” 그 한마디가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여행은 장소를 소비하는 행위가 아니라, 그곳의 규칙을 배우고 존중하는 과정이라는 사실을 몸으로 익혔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제 나는 계산대 앞에서 서두르지 않는다. 메모장을 꺼내 시작가를 확인하고, 가능하면 웃으며 제안한다. ‘이 가격이면 지금 바로 결정할 수 있어요.’ 상대가 고개를 끄덕일 때, 우리는 모두 시간을 절약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