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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카페 문화가 한국과 다른 점

by Koriland 2026. 2. 13.

카페는 ‘잠깐 들르는 곳’이 아니라 ‘머무는 곳’에 가깝다

태국에서 카페를 처음 들어갔을 때 느낀 건 묘한 정적이었다. 음악은 흐르고 있었지만 시끄럽지 않았고, 사람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꽤 오래 앉아 있었다. 한국에서는 카페가 비교적 빠르게 회전하는 공간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특히 인기 있는 곳에서는 주문을 하고 자리를 잡아도 어딘가 눈치가 보인다. 오래 앉아 있으면 괜히 추가 주문을 해야 할 것 같고, 사람이 몰리면 자연스럽게 일어나게 된다. 그런데 방콕의 한 로컬 카페에서 나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경험했다. 노트북을 펼쳐놓고 몇 시간째 작업하는 사람, 이어폰을 꽂고 창밖만 바라보는 사람, 친구와 작은 목소리로 긴 대화를 이어가는 사람까지. 누구도 서두르지 않았다. 나 역시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을 주문했는데, 어느새 두 시간을 넘게 앉아 있었다. 창밖으로는 오토바이가 지나가고, 간간히 스콜이 내렸다 그쳤다. 그 안에서 사람들은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카페는 단순히 음료를 마시는 장소라기보다, 하루 중 잠시 숨을 고르는 공간처럼 느껴졌다. 직원도 재촉하지 않았고, 주문을 강요하는 분위기도 없었다. 그 여유가 공간을 지배하고 있었다. 한국에서라면 일정 사이에 끼어 있는 장소가 카페라면, 태국에서는 카페 자체가 하나의 일정처럼 보였다.

가격보다 ‘분위기’를 소비하는 방식

태국은 물가가 저렴하다는 인식이 강하지만, 카페만큼은 꼭 그렇지만도 않다. 길거리 커피는 매우 저렴하지만, 인테리어가 잘 되어 있고 사진이 잘 나오는 카페는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은 가격대를 형성한다. 처음에는 ‘왜 이렇게 비싸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몇 번 방문하다 보니 시선이 달라졌다. 사람들은 단순히 커피를 사는 것이 아니라, 공간을 소비하고 있었다. 큰 창이 있고 식물로 가득 찬 카페, 콘크리트와 우드 톤으로 꾸며진 모던한 카페, 루프탑에서 노을을 볼 수 있는 카페까지. 음료 가격에는 그 공간에서 보내는 시간이 포함되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한 번은 친구와 함께 유명한 카페를 방문했는데, 음료를 주문하고 자리 잡는 순간 주변을 둘러보는 사람들이 많았다. 사진을 찍고, 천천히 음료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고, 다시 자리를 옮겨 다른 각도에서 사진을 남긴다. 한국에서도 이런 문화가 있지만, 태국에서는 그 속도가 조금 더 느렸다. ‘가성비’라는 단어보다 ‘분위기’가 더 중요해 보였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그 분위기를 즐기는 방식이 비교적 자연스러웠다. 누군가의 시선을 의식하기보다, 자기 페이스대로 시간을 보내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속도의 차이가 만들어내는 하루의 리듬

태국 카페에서 가장 크게 느낀 차이는 속도였다. 한국에서는 주문과 제조, 픽업이 비교적 빠르게 이루어진다. 줄이 길어도 회전이 빠르다. 하지만 태국 로컬 카페에서는 음료가 나오기까지 시간이 조금 더 걸리는 경우가 많았다. 처음에는 답답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몇 번 경험하고 나니, 그 기다림조차 공간의 일부처럼 느껴졌다. 사람들은 주문 후 자리로 돌아가 대화를 이어가거나 휴대폰을 본다. 기다림이 초조함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어느 날은 주문한 음료가 예상보다 늦게 나왔지만, 그 시간 동안 나는 창밖을 바라보며 빗소리를 듣고 있었다. 이상하게도 짜증이 나지 않았다. 그 공간 자체가 이미 목적지였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카페가 종종 ‘중간 지점’의 역할을 한다. 약속 전 잠깐, 식사 후 잠깐, 이동 중 잠깐. 반면 태국에서는 카페에 가는 것 자체가 하루의 중요한 일정처럼 느껴졌다. 그래서인지 자리에 앉아 있는 시간에 대한 부담이 적다. 이런 속도의 차이는 결국 생활 방식의 차이에서 오는 것 같았다. 빠르게 소비하고 이동하는 흐름보다, 머물며 보내는 시간이 더 강조되는 분위기. 태국 카페 문화는 단순한 음료 문화가 아니라, 하루를 보내는 방식과 연결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리듬에 익숙해질수록 나의 하루도 조금씩 느려졌다. 급하게 휴대폰을 확인하던 습관이 줄어들고, 창밖을 오래 바라보는 시간이 늘어났다. 카페 한 잔이 단순한 음료가 아니라, 속도를 조절하는 장치처럼 느껴진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