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달랐던 분위기
태국에서 병원을 가게 될 거라고는 크게 생각하지 않았다. 여행 중에는 몸이 조금 불편해도 “하루 쉬면 괜찮겠지”라고 넘기기 마련이다. 그런데 어느 날은 속이 계속 더부룩했고 열도 오르는 것 같았다. 더운 날씨 탓인지, 음식이 맞지 않았던 건지 정확히는 알 수 없었지만 몸이 확실히 평소와 달랐다. 잠시 망설이다가 근처 병원을 검색해 찾아갔다.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여기가 정말 병원인가?’였다. 한국에서 익숙한 병원 특유의 소독약 냄새와 분주한 분위기가 아니라, 로비가 넓고 조명이 부드러웠다. 호텔처럼 안내 데스크가 있고, 직원들이 차분하게 앉아 있었다. 에어컨이 시원하게 돌아가고, 대기 의자는 소파 형태였다. 접수 창구에서 여권을 건네고 간단한 정보를 작성하는 동안, 직원은 영어로 천천히 설명해주었다. 말이 완벽히 통하는 건 아니었지만, 서로 서두르지 않는 태도 덕분에 긴장이 조금 풀렸다. 병원이라는 공간은 늘 약간의 두려움을 동반하는데, 그곳에서는 그 감정이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대기 공간에서는 사람들이 조용히 휴대폰을 보거나 동행과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복잡하고 소란스러운 느낌이 아니라, 정돈된 분위기였다. 태국 병원의 첫인상은 ‘치료받는 공간’이라기보다 ‘관리받는 공간’에 가까웠다.
진료 과정에서 느낀 세심함과 거리감
대기 시간은 길지 않았다. 한국처럼 번호가 빠르게 넘어가는 구조였지만, 전체적인 흐름은 조금 더 느긋하게 느껴졌다. 진료실에 들어가 의사를 마주했을 때, 그는 먼저 천천히 증상을 물었다. 내가 서툰 영어로 설명해도 중간에 끊지 않고 끝까지 들었다. 손으로 배를 짚으며 통증 위치를 설명하자 고개를 끄덕이며 확인 질문을 이어갔다. 진료는 급하게 진행되지 않았다. 체온을 재고, 혈압을 확인하고, 필요하다면 간단한 검사도 진행했다. 한국에서는 진료 시간이 비교적 짧게 느껴질 때가 있는데, 그날은 시간의 압박이 덜했다. 물론 모든 병원이 그렇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내가 경험한 그 순간은 비교적 차분했다. 진료가 끝난 뒤에는 병원 안에 있는 약국으로 이동했다. 약사는 처방전을 확인하고, 약을 하나씩 설명해주었다. 언제 먹어야 하는지, 식후인지 공복인지, 졸림이 올 수 있는지까지 차분하게 안내했다. 약 봉투에는 영어로 복용 방법이 적혀 있었다. 비용을 결제하는 순간에는 약간의 긴장이 다시 찾아왔다. 보험 적용 여부에 따라 체감이 다르겠지만, 외국인 신분으로 방문하다 보니 한국에서와는 다른 가격 체계를 느끼게 됐다. 하지만 계산 과정도 비교적 투명했다. 진료비, 검사비, 약값이 각각 구분되어 있었고, 직원은 영수증을 하나하나 설명해주었다. 시스템은 낯설었지만, 혼란스럽지는 않았다.
타국에서 아픈다는 것의 무게
병원을 나와 숙소로 돌아오는 길, 생각보다 많은 감정이 섞여 있었다. 몸이 아프다는 건 어디서든 불편하지만, 타국에서는 그 무게가 조금 더 크게 느껴진다. 언어가 완벽하지 않다는 점, 의료 시스템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다는 점이 동시에 떠오른다. 그날도 약 봉투를 들고 엘리베이터를 타면서 문득 집이 멀게 느껴졌다. 한국이라면 익숙한 병원에 가서 빠르게 처리했을 일을, 이곳에서는 하나하나 확인해야 한다는 사실이 새삼 실감났다. 하지만 동시에 안도감도 있었다. 막연히 걱정했던 것보다 병원은 현대적이었고, 의료진은 전문적으로 보였으며, 시스템은 비교적 정돈되어 있었다. 이후로는 숙소 근처 병원의 위치를 지도에 저장해두었다.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기본 정보 정도는 알아두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태국 병원에서의 경험은 단순히 진료를 받았다는 사실보다, 이 나라의 또 다른 단면을 본 순간이었다. 여행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는 의료 시스템, 일상적인 건강 관리의 구조를 잠시나마 들여다본 셈이었다. 몸이 아팠던 하루였지만, 그 경험 덕분에 태국이라는 공간이 조금 더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화려한 사원이나 야시장과는 다른 결의 기억이었다. 그리고 그날 이후, 이곳에서의 생활이 조금 더 ‘관광’이 아니라 ‘체류’에 가까워졌다는 느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