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에서 처음 마신 맥주의 낯선 모습
태국 여행을 하면서 저녁에 노상 식당에 앉아 맥주를 주문했을 때, 나는 예상치 못한 장면을 마주했다. 시원하게 식힌 병맥주가 테이블 위에 놓였고, 그 옆에는 얼음이 가득 담긴 플라스틱 컵이 함께 따라왔다. 한국에서는 흔히 맥주를 있는 그대로, 혹은 생맥주로 즐기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렇기에 얼음을 넣어 마시는 모습은 낯설고 어색하게 다가왔다. ‘맥주 맛이 연해지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하지만 옆자리 현지인들은 아무렇지 않게 얼음을 컵에 담고 맥주를 따라 마셨다. 호기심이 생긴 나는 그 모습을 그대로 따라 했다. 얼음이 컵 안에서 찰랑거리며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황금빛 맥주가 컵을 채웠고, 손에 쥔 순간부터 차가움이 전해졌다. 첫 모금은 예상과 달랐다. 도수는 낮아지고 맛은 부드러워졌지만, 방콕 특유의 덥고 습한 공기 속에서는 오히려 그 청량감이 더 크게 다가왔다. 이 낯선 방식이 단순한 취향 차이가 아니라, 태국의 기후와 생활 방식이 만든 문화라는 사실을 금세 알 수 있었다.
얼음이 만드는 여유와 함께 나누는 시간
얼음을 넣어 마시는 태국식 맥주는 단순히 차가움을 유지하는 수단을 넘어, 사람들의 대화와 시간을 길게 만들어 주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얼음이 서서히 녹으면서 맥주는 점점 연해졌고, 덕분에 금세 취하지 않고 오랜 시간 동안 잔을 기울일 수 있었다. 옆자리 태국인 가족은 서로의 잔에 얼음을 채워주며 웃었고, 젊은 친구들은 건배를 반복하며 맥주와 함께 담소를 이어 갔다. 나는 그 모습에서 한국과는 다른 음주 문화를 보았다. 한국에서는 술자리의 흐름이 빠르게 진행되고, 때로는 빨리 취하기 위해 술을 연거푸 마시기도 한다. 하지만 태국에서는 얼음 덕분에 맥주 한 잔이 길게 이어지고, 그만큼 대화의 흐름도 느긋했다. 취기가 오르기 전에 음식과 이야기가 중심이 되면서 분위기는 더 따뜻하고 여유로웠다. 태국인 친구가 나에게 말해 주었다. “얼음을 넣으면 술이 길어지고, 함께하는 시간이 더 많아져요.” 그 말 속에서 나는 이 문화의 본질을 이해할 수 있었다. 얼음은 단순한 차가움이 아니라, 시간을 함께 늘려 주는 매개체였다. 그래서 태국 사람들은 굳이 서둘러 취하지 않고, 웃음과 대화 속에서 천천히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었던 것이다.
다름 속에서 배운 술자리의 의미
한국으로 돌아와 태국에서의 경험을 떠올리면 아직도 신기한 기분이 든다. 한국에서는 맥주에 얼음을 넣으면 ‘맛을 해친다’는 생각이 먼저 떠오른다. 그러나 태국에서는 오히려 그 방식이 오랜 세월 사람들의 생활과 기후에 맞게 정착된 문화였다. 더운 날씨 속에서 빠르게 식어 버리는 맥주를 끝까지 시원하게 유지하려는 지혜, 그리고 도수를 낮춰 더 많은 사람과 오랫동안 나누기 위한 배려가 담겨 있었다. 그 차이는 단순히 음주 습관의 차이가 아니라, 삶을 대하는 태도와 공동체적 가치의 차이로도 느껴졌다. 태국의 밤거리에서 얼음을 채운 맥주잔을 들고 웃던 사람들의 모습은 단순히 술자리를 즐기는 모습이 아니었다. 그것은 삶의 무게를 잠시 내려놓고 서로를 위로하는 작은 의식 같았다. 나 또한 그 자리에 앉아 얼음을 가득 채운 맥주를 마시며, 술이 단순히 취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사람을 이어 주는 매개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앞으로 언젠가 다시 태국을 찾는다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얼음을 가득 담은 잔을 들어 올릴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 다시 한 번 태국식 맥주 문화가 가진 여유와 따뜻함을 온전히 느낄 수 있으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