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시장에 발을 들이다
코랏, 정식 명칭으로는 나콘라차시마. 방콕에서 버스로 몇 시간을 달려 도착한 이 도시는 태국 동북부로 들어가는 관문이자 ‘이산 지역의 중심지’라고 불린다. 한국에서라면 크게 알려진 곳은 아니었지만, 나는 이곳에서 태국의 진짜 일상을 보고 싶었다. 그래서 가장 먼저 향한 곳이 바로 로컬 시장이었다. 시장 입구에 들어서자 강렬한 냄새가 코끝을 자극했다. 생선이 늘어선 좌판, 열대과일이 산처럼 쌓여 있는 진열대, 갓 튀겨낸 기름 냄새가 한꺼번에 몰려왔다. 현지 사람들은 익숙한 듯 장바구니를 들고 분주히 오갔고, 상인들은 목청을 높여 손님을 불러 모았다. 나는 카메라를 꺼내 들지도 못하고, 그저 사람들 흐름에 휩쓸려 발걸음을 옮겼다. 조금만 서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를 정도로 덥고 습했지만, 그 열기 속에서 사람들의 활기는 더욱 뜨거워 보였다. 시장 한쪽에서는 생닭을 손질하는 장면이 보였고, 다른 쪽에서는 아이들이 사탕을 집어 들며 엄마 손을 끌고 있었다. 그 풍경 속에서 나는 어느새 ‘관광객’이 아니라 ‘낯선 손님’으로 서 있었다. 한국의 대형마트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삶의 맥박 같은 시장의 리듬이 나를 단번에 사로잡았다.
처음 마주한 흥정의 순간
시장 안쪽으로 들어가자 내 눈을 붙잡은 건 원색이 선명한 천이었다. 태국 특유의 화려한 무늬가 그려진 원단이 좌판 위에 펼쳐져 있었다. 이 고운 색감의 옷감이라면 집으로 돌아가 가족에게 선물로 주어도 좋을 것 같았다. 나는 조심스레 상인에게 가격을 물었다. 상인은 손가락을 세우며 300바트를 외쳤다. 한국 돈으로 약 12,000원 정도, 순간 나는 너무 비싸다고 느꼈다. 왜냐하면 그 옆 좌판에 있던 단순한 원단은 150바트에 팔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머릿속에서 “흥정을 해야 하나, 그냥 사야 하나” 수많은 생각이 스쳤다. 한국에서는 가격표가 붙어 있으면 그대로 사는 게 당연했지만, 이곳은 달랐다. 여행 책자에서 본 바로는 태국의 전통 시장에서는 흥정이 문화라는 것이 떠올랐다. 긴장된 목소리로 나는 200바트를 제안했다. 그러자 상인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내 얼굴을 보며 재미있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그 순간 시장의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단순한 거래가 아니라 작은 게임이 시작된 것이다. 그는 280바트, 나는 220바트. 숫자는 오르락내리락했고, 주변에서 지켜보던 다른 상인들이 나를 응원하듯 웃음을 터뜨렸다. 얼굴은 빨개졌지만, 묘하게 즐거웠다. 흥정은 단순히 싸게 사기 위한 기술이 아니라, 상대와 눈을 맞추고 대화를 나누는 과정이라는 사실을 몸소 느끼는 순간이었다.
가격 이상의 것을 얻다
마침내 우리는 240바트에 합의했다. 손에 쥔 옷감이 그렇게 특별해 보일 수가 없었다. 물론 가격으로 따지면 큰 차이는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주고받은 웃음과 눈빛, 작은 손동작들은 값으로 환산할 수 없는 경험이었다. 상인은 물건을 건네며 내 손을 꼭 잡았다. “코쿤 크랍(고맙습니다)”이라는 짧은 말이었지만, 그 안에 담긴 진심이 전해졌다. 나는 그 자리에서 단순히 원단을 산 것이 아니라, 태국 시장의 문화를 온몸으로 체험한 것이다. 흥정을 통해 알게 된 건 ‘싸게 사는 법’이 아니라 ‘상대의 생활을 존중하는 법’이었다. 시장은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공간이 아니라, 사람들의 삶과 이야기가 오가는 무대였다. 돌아오는 길, 손에 들린 옷감을 바라보며 나는 스스로에게 웃음을 지었다. “나는 오늘 태국 사람들과 같은 리듬으로 숨을 쉬었다.” 코랏 시장에서의 첫 흥정 경험은 내게 여행의 또 다른 의미를 새겨 주었다. 값은 얼마 되지 않지만, 그날의 기억은 앞으로도 내 여행기를 빛내 줄 가장 소중한 장면 중 하나로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