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물안개와 붉은연꽃바다로 가는 첫 항해
우돈타니의 새벽은 도시의 소음 대신 물새 울음과 얕은 물안개로 시작됐다. 붉은연꽃바다로 불리는 넓은 호수로 가는 부두에는 작은 목선들이 줄지어 서 있었고, 배사공은 손전등으로 갑판을 비추며 구명조끼를 건넸다. 모터가 낮게 울리자 호수 표면이 비늘처럼 떨렸고, 차가운 바람이 뺨을 스쳤다. 수평선 위로 아주 얇은 빛이 번질 때 물빛은 회색에서 은빛, 다시 연분홍으로 옮겨 갔다. 이른 시간에 떠난 이유는 분명했다. 해가 높아지기 전, 연꽃이 가장 또렷이 깨어나는 순간을 만나기 위해서다. 배는 갈대를 스치며 천천히 호수의 심장부로 나아갔고, 물 위에 떠 있는 작은 사당에는 아침공양을 올리던 현지인들의 합장이 남아 있었다. 항로를 가르는 물살 뒤로 가느다란 파문이 퍼지더니, 어디선가 바닥을 튕겨 오른 물고기의 은빛 등이 번뜩였다. 가이드는 먼 곳을 가리키며 ‘저기부터 군락이 시작된다’고 속삭였다. 안개 너머, 아직 태양이 얼굴을 다 드러내기도 전에, 호수의 표면에 분홍 점들이 촘촘히 박히기 시작했다. 배의 선두가 그 사이를 파고들자 꽃잎 끝에 맺힌 물방울이 햇빛을 받아 작은 프리즘처럼 반짝였다. 나는 카메라를 들었다가 곧 내렸다. 화면은 넓이를 담지 못했고, 렌즈가 잡지 못하는 냄새와 온기를 글자로 남기고 싶었다. 코끝에는 진흙과 꽃줄기의 풋내가 섞여 올라왔고, 귓가에서는 모터 소리와 물수제비 소리가 교대로 울렸다. 배사공은 오래전부터 이 호수가 마을의 달력이 되어주었다고 말했다. 연꽃이 열리는 주기와 물높이, 바람의 방향을 보며 사람들은 모내기와 장터 날짜를 정했고, 축제의 행렬도 이때에 맞춰 준비했다. 여행 전에는 ‘붉은연꽃바다’라는 이름이 다소 과장처럼 느껴졌지만, 군락의 가장자리에서 중심부를 향할수록 그 말이 사실임을 알게 되었다. 호수는 색이 아니라 시간으로 물들어 있었다. 해가 오를수록 빛이 농도를 바꾸고, 군락은 우리의 속도를 느리게 만들었다. 나는 의자에서 몸을 조금 낮춰 수면에 가까이 얼굴을 두었다. 물결에 비친 하늘은 코랄빛으로 미묘하게 흔들렸고, 그 위에 수천 송이의 분홍이 숨을 쉬듯 피고 졌다.
분홍빛 호수의 심장부에서 마주한 침묵의 리듬
군락 깊숙이 들어서자 주변의 모든 소리가 한 톤 낮아졌다. 바람도, 말소리도, 심지어 모터의 진동마저 얌전해지는 느낌이었다. 연꽃잎은 물 위에 바짝 붙어 있으면서도 줄기 끝의 꽃은 믿기 어려울 만큼 단정하게 하늘을 향해 서 있었다. 꽃 하나가 작은 등불이라면, 이곳은 수평선까지 이어진 거대한 등불의 바다였다. 나는 손을 뻗어 가장자리의 잎을 살짝 만져 보았다. 표면은 왁스칠을 한 듯 매끄러웠고, 밤새 머금은 이슬이 구슬처럼 구르다 내 손끝에서 또각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가까이 들여다본 꽃은 더 놀라웠다. 살구빛에서 체리빛으로 넘어가는 그라데이션, 중심부의 노란 꽃술은 섬세한 빗살처럼 완벽한 대칭을 이루고 있었다. 삶에서 ‘대칭’이라는 말을 이렇게 자연 앞에서 실감하기는 처음이었다. 가이드는 배를 멈추고 노를 물 위에 눕히더니, 이 호수의 연꽃이 계절과 사람의 일을 잇는 표식이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비가 많은 해에는 군락이 더 안쪽까지 퍼지고, 물새가 일찍 둥지를 트는 해에는 꽃이 일찍 속살을 드러낸다고 했다. 숫자와 달력이 아니라 몸으로 읽는 시간표였다. 그 말을 듣자 귀가 더 예민해졌다. 멀리서 갈대가 긁히는 소리, 어디선가 튀어 오른 물고기가 다시 수면과 부딪히는 소리, 배 밑으로 천천히 미끄러지는 물의 낮은 소음. 나는 카메라 뷰파인더를 다시 들었다가 또 내렸다. 이 풍경은 찍는 것이 아니라, 일정 시간 머무르며 듣고 맡아야 비로소 스스로를 보여 주는 종류의 장면이었다. 함께 탄 여행객 중 누군가는 프러포즈를 준비해 왔다며 작은 꽃다발을 꺼냈고, 사공은 미소를 지으며 배를 군락 한가운데 고정해 주었다. 분홍의 파도 사이에서 건네진 반지는 오후의 햇살보다도 환하게 빛났다. 나는 빛을 향해 셔터를 누르지 않고, 그 순간이 흘러가는 속도를 눈으로만 따라가기로 했다. 한동안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우리의 침묵은 존경의 다른 표현이었고, 꽃잎들은 마치 그것을 알아차린 듯 더 환하게 벌어졌다. 그 고요 속에서도 변화는 쉬지 않았다. 해가 손바닥 한 뼘쯤 더 오르자 꽃잎의 색은 한 톤 밝아졌고, 잎사귀의 경계가 더 선명해졌다. 물 위로 비친 구름은 연한 라일락색으로 길게 늘어져 흘렀다. 나는 주머니에서 작은 수첩을 꺼내 오늘 본 색의 이름을 적었다. 로즈쿼츠, 살몬핑크, 코랄, 피치. 단어를 옮기는 동안에도 풍경은 밀리초 단위로 새로 칠해지고 있었다. 사공은 ‘이곳에서는 서두를수록 덜 보게 된다’고 말했다. 노를 급히 젓지 않으면 더 많은 장면이 스스로 다가온다는 뜻이었다. 우리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고, 배는 바람의 호흡에 맞춰 천천히 회전했다. 그때 멀리서 붉은 천을 두른 승려 두 분이 타고 있는 작은 배가 다가왔다. 그들은 꽃 사이 좁은 길을 헤치며 묵상 중인 듯 눈을 감고 있었고, 배가 스칠 때 우리 모두 자연스럽게 두 손을 모았다. 호수 한가운데서 맞춘 합장의 순간, 이 풍경이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살아 있는 신앙과 일상의 무대라는 사실이 또렷해졌다.
돌아오는 길에 남은 여운과 삶으로 데려온 속도
해가 머리 위로 오르자 분홍빛은 주홍과 복숭아색을 지나 더 밝은 핑크로 옮겨 갔다. 호수 가장자리의 노점에서는 코코넛을 깎는 칼 소리가 경쾌하게 들렸고, 갓 구운 바나나의 달큰한 향이 바람을 타고 배 위까지 스며들었다. 우리는 부두로 돌아와 뜨끈한 국수 한 그릇으로 손끝을 데우고, 여분의 얼음을 띄운 라임주스를 마시며 뺨에 남은 햇살을 식혔다. 가게 주인은 ‘가장 좋은 시간은 아침 여섯에서 아홉 사이’라며, 해가 높아지면 꽃이 조금씩 몸을 오므린다고 귀띔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오늘 본 장면의 순서를 마음속에서 다시 재배열했다. 부두에서의 첫 떨림, 군락의 문턱에서 느린 회전, 한가운데의 고요, 그리고 돌아오는 길의 환한 웃음들. 도시에서라면 배경 소음에 묻혀 스쳐 갔을 작은 사건들이 여기서는 하나하나 또렷한 챕터로 자리 잡았다. 길가의 상인은 내 손목의 태닝 자국을 가리키며 ‘이곳의 햇빛을 잘 데려가라’고 농담했고, 나는 웃으며 연꽃 모양의 작은 자석을 샀다. 그제야 깨달았다. 오늘 내가 얻은 가장 큰 기념품은 물건이 아니라 속도라는 것을. 분홍을 더 선명히 보려면 주변의 소음을 줄여야 하고, 넓이를 제대로 느끼려면 한 발 물러서야 한다는 단순한 법칙. 호수는 색으로 채워졌지만, 내 마음은 빈칸을 얻었다. 그 빈칸 덕분에 나는 저녁에 도착할 다음 도시의 소음도 조금은 다르게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버스 창밖으로 호수가 멀어질 때, 햇빛은 아직 군락의 끝을 떠나지 못한 듯 미세한 반짝임을 남겼다. 나는 손바닥을 창틀에 올려 그 떨림을 마지막으로 느꼈다. 여행이란 결국, 풍경을 소비하는 일이 아니라 그 풍경의 리듬을 자신의 생활로 가지고 돌아오는 일이라는 것. 언젠가 다시 이곳을 찾게 된다면 나는 더 이른 시간에, 더 가벼운 짐으로, 더 적은 말을 준비할 것이다. 새벽 물안개를 가르며 호수의 심장으로 들어가, 카메라 대신 호흡으로 장면을 기록하고, 돌아오는 배 위에서 손등에 맺힌 물방울을 햇빛에 비추어 볼 것이다. 그리고 마음속에 짧게 적어 둘 한 문장. ‘붉은연꽃바다는 계절이 아니라 태도다.’ 그 문장을 속으로 천천히 읽을 때, 나는 이미 다시 그 분홍빛 길 위를 항해하고 있을 것이다. 버스가 한 굽이를 돌 때마다 호수는 다른 각도로 모습을 바꿨고, 나는 좌석을 살짝 옮겨 창문 프레임을 바꿔 가며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호숫가에서 만난 한 노인은 매년 손주와 함께 해가 바뀌면 연꽃을 보러 온다고 했다. 꽃의 밀도와 색의 농도로 그해의 운을 점치고, 돌아가서는 마당의 항아리 물빛과도 비교해 본다고. 그 이야기를 듣는 동안 시간은 느리게 늘어났다. 여행자가 잠깐 머문 하루가 누군가의 세대를 잇는 의례와 겹쳐질 때, 풍경은 단순한 장관을 넘어 삶의 교본이 된다. 나는 이어폰을 빼고, 핸드폰 화면을 끄고, 제일 마지막으로 남은 장면을 눈으로 저장했다. 햇빛에 반사된 작은 물결들이 도로 난간에 부서져 춤을 추고, 그 사이로 철새 한 무리가 낮게 활공했다. 연분홍의 바다는 다시 일상의 회색 속으로 스며 들었지만, 내 걸음에는 그 느린 리듬이 남았다. 오늘 밤 숙소의 샤워기 물줄기에도, 시장에서 고른 망고의 결에도, 나는 분홍의 호흡을 덧칠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