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향기가 길을 안내하다
로컬 시장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내 발걸음을 붙잡은 건 굽히는 철판의 지글거림과 코끝을 감싸는 코코넛 향이었다. 바퀴 달린 카트 위에서는 하얀 반죽이 동전 크기로 또르르 떨어지고, 그 위로 진한 코코넛 밀크가 한 번 더 얹혔다. 가장자리가 얇게 말리며 바삭해지는 순간, 아주머니는 작은 주걱으로 반달 모양을 만들어 접었다. 태국인들이 사랑하는 카놈끄록, 갓 구운 미니 팬케이크였다. 옆에는 노란 펜던 잎 향이 배어 있는 녹색 젤리가 길게 늘어선 커다란 통에서 흘러나왔고, 한쪽에서는 얇은 크레페 같은 카놈부앙이 오렌지색 달걀실(포이텅)을 얹고 있었다. 투명 플라스틱컵에 층층이 담긴 카놈뚜아이(코코넛 푸딩)는 표면이 매끈했고, 바나나 잎에 삼각뿔로 접힌 카놈사이사이에서는 따끈한 증기가 새어 나왔다. 가판대 끝에는 한입 크기의 과일 모형이 반짝였는데, 알고 보니 녹두 앙금을 곱게 빚어 만든 룩춥이었다. 유리 진열대 위에서 작은 망고, 체리, 고추 모양이 칠광처럼 빛났고, 상인은 “먹기 아깝죠?”라며 웃었다. 시장 한가운데를 스치는 바람에는 설탕 시럽, 구운 바나나, 갓 쪄낸 찹쌀의 냄새가 겹겹이 섞여 있었다. 지나가는 아이는 봉지째 얼음을 털어 넣은 코코넛 아이스크림을 들고 뛰었고, 젊은 커플은 찹쌀과 망고를 나눠 먹으며 서로의 포크를 바꿔 들었다. 한국에서 디저트는 보통 카페 유리 진열장 속에 정갈히 놓여 있지만, 이곳에서는 굽고, 찌고, 접고, 접시에 옮기는 모든 과정이 고스란히 ‘거리의 쇼’가 된다. 가격표는 간단했다. 작은 컵 10~20바트, 바나나 잎 패키지 15바트, 모듬 한 상자 50바트. 숫자는 짧았지만, 향과 소리, 손놀림은 긴 문장처럼 이어졌다. 나는 우선 카놈끄록 한 판을 받아 들었다. 바깥은 종이처럼 바삭했고, 안쪽은 뜨겁고 부드러웠다. 혀끝에 남는 코코넛의 고소함이 첫 문장을 열어 주었다. 오늘 디저트 수업의 첫 교시는 ‘향’이었다.
코코넛의 바다, 설탕의 색, 그리고 손으로 배우는 레시피
시장 안쪽으로 더 들어가자 커다란 스테인리스 찜통에서 김이 올라왔고, 뚜껑을 여는 순간 은은한 단내가 폭죽처럼 터졌다. 아주머니가 종지에 떠 준 카놈뚜아이는 두 겹으로 나뉘어 위는 순한 짠맛, 아래는 달콤함이 받쳐 주는 구조였다. 혀 위에서 두 맛이 맞물리며 균형을 잡을 때, 태국 디저트가 단순히 ‘달다’를 넘어서 ‘조율’의 미학이라는 걸 이해했다. 옆에서는 둥근 솥에 코코넛 밀크가 도는 중이었고, 작은 찹쌀 경단이 동동 떠올랐다. 부아로이. 경단을 국자로 건져 올리니 하얀 김이 뺨을 스쳤다. 가게 주인은 “오늘은 단호박을 조금 갈아 넣었어요”라고 귀띔했다. 노란빛이 살짝 비치는 경단을 씹자, 펜던 잎의 초록 향이 뒤늦게 올라왔다. 그 바로 맞은편 노점에서는 루비라는 이름의 뚭팀끄롭이 반짝거렸다. 빨갛게 물들인 물밤을 타피오카로 감싸 젤리처럼 쫀쫀해진 알갱이를 얼음과 코코넛 밀크에 넣어 먹는 디저트. 숟가락이 컵 벽에 닿으며 맑은 소리를 냈고, 얼음이 녹아 들수록 달콤함이 길어졌다. 상인은 “더위에는 이게 최고”라며 얼음을 한 주먹 더 얹어 주었다. 테이블 끝에는 금빛 포이텅과 둥근 통영(텅욧), 별 모양 텅입이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달걀 노른자와 설탕 시럽으로 만드는 이 ‘황금 3형제’는 과거 외래의 기술이 태국식으로 뿌리내린 결과라고 했다. 한 입 베어 물자 실크처럼 풀어지는 질감이 혀끝을 간질였다. 디저트마다 쓰는 설탕도 달랐다. 사탕수수 시럽은 선명한 달콤함, 야자당은 구운 캐러멜처럼 둥근 향을 남겼다. 바나나 잎에 싸서 찐 카오톰맛(찹쌀+바나나)은 손으로 쥐었을 때의 따뜻함까지 함께 전해졌다. 포장을 풀면 찹쌀의 윤기가 반짝이고, 바나나 결이 부드럽게 끊어진다. 옆자리 손님이 손짓으로 먹는 법을 알려 줬다. 손가락으로 한 입 크기를 집어 소금 한 꼬집을 찍는 것. 짠맛이 뒤늦게 달콤함을 깨우는 방식이 낯설면서도 묘하게 설득력 있었다. 그 사이 다른 가판대에서는 로띠에 코코넛 커스터드 ‘상카야’를 얹어 팔고 있었고, 노인은 미소를 지으며 내 접시에 초록색 상카야를 한 숟갈 더 얹어 주었다. 펜던의 향이 농밀하게 퍼졌다. 나는 수첩을 꺼내 간단한 레시피를 받아 적었다. “코코넛 밀크 1, 설탕 1, 달걀 1, 펜던 잎. 약불, 천천히.” 아주머니는 손목을 굴리며 “급히 저으면 분리돼요”라고 덧붙였다. 레시피의 핵심은 재료보다 ‘속도’였다. 천천히, 오래, 자주 맛보기. 태국 디저트의 비밀은 조리 온도와 향의 타이밍, 그리고 기다림의 미학에 있었다.
디저트가 가르친 시장의 마음, 나눔으로 완성되는 달콤함
한 바퀴를 더 돌자 포장을 마치는 손길들이 눈에 들어왔다. 바나나 잎을 겹겹이 접어 자연스러운 단추로 고정하는 방식, 얇은 대나무 꼬챙이로 봉지 윗부분을 매듭처럼 끼우는 방식, 작은 스티커 대신 종이 끈으로 묶어 손에 감기는 촉감을 남기는 방식. 디저트는 맛만큼이나 ‘담는 법’이 이야기였다. 시장의 디저트는 누군가에게 건네질 전제를 품고 있었다. 길모퉁이에서는 학생들이 봉지째 산 카놈찬(층떡)을 돌려가며 한 층씩 떼어 먹었다. 풀잎 향이 나는 초록과 코코넛 우윳빛 흰색이 번갈아 나타나며, 층을 떼어내는 동작이 작은 의식처럼 느껴졌다. 조금 전부터 나를 지켜보던 상인은 내가 들고 있던 모둠 상자에 룩춥을 하나 더 얹어 주었다. “사진 찍을 거면 이게 예뻐요.” 나는 웃으며 ‘캅쿤 캅’을 되뇌고, 방금 배운 대로 끝음을 낮춰 공손함을 얹었다. 계산할 때 상인은 계산기 숫자를 내게 돌려 보여 주었고, 나는 손가락으로 다시 한번 확인했다. 흥정은 없었지만, 확인은 서로의 안심이었다. 바깥으로 나오니 해가 기울며 시장의 색이 주황빛으로 깊어졌다. 디저트 봉지를 들고 벤치에 앉아 숨을 고르니, 오늘의 달콤함이 입안보다 마음에 먼저 차오르는 걸 느꼈다. 태국의 디저트는 ‘배를 끝내는 음식’이 아니라 ‘사람을 잇는 신호’에 가까웠다. 단맛은 빨리 사라지지만, 나눌 때 남는 온기는 오래 간다. 나는 옆에 앉은 손님과 카놈부앙을 반으로 나눴다. 얇은 과자껍질이 바삭 소리를 내며 부서지고, 속의 포이텅이 실처럼 흩어졌다. 우리는 거의 동시에 웃었다. 언어가 달라도 웃음의 타이밍은 비슷했다. 시장을 떠나며 마지막으로 카페에서 아이스 타이티를 한 잔 샀다. 잔 위에 떠 있는 얼음 사이로 루이보스와 향신료의 붉은 빛이 흔들렸다. 빨대를 한 번 더 저으며 나는 오늘의 문장을 정리했다. “태국 디저트는 달콤함을 ‘조율’하고, 향으로 ‘기억’하며, 나눔으로 ‘완성’된다.” 숙소로 돌아와 봉지를 풀자 바나나 잎의 푸른 냄새가 방 안으로 퍼졌다. 내일 아침에 먹을 몫을 따로 덜어 두며, 나는 다시 한 번 시장의 리듬을 떠올렸다. 굽고, 찌고, 접고, 나누는 순서. 그 순서가 오늘을 부드럽게 마무리했다. 다음에 또 이 시장을 찾는다면, 나는 같은 동선으로 걷고, 같은 순서로 한 접시씩 맛볼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반드시 하나를 더 사서 누군가와 나눌 것이다. 이 달콤함은 혼자 먹기엔 늘 조금 넘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