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깐짜나부리 전쟁박물관을 방문한 특별한 하루

by Koriland 2025. 8. 22.

전쟁의 흔적을 찾아 떠난 여정

방콕에서 서쪽으로 차를 타고 두세 시간을 달리면 도착하는 도시, 깐짜나부리. 이곳은 태국 여행을 계획할 때 흔히 떠올리는 방콕이나 파타야, 치앙마이처럼 유명한 관광지는 아니지만, 역사적으로는 특별한 의미를 지닌 곳이다. 깐짜나부리에는 ‘콰이강의 다리’로 널리 알려진 철도가 있고,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수많은 전쟁 포로들이 이 지역에서 강제노역을 하며 목숨을 잃었다. 나는 평소 책이나 영화에서만 접하던 이 이야기를 직접 확인하고 싶어, 하루 시간을 내어 전쟁박물관을 찾았다. 버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방콕의 복잡한 도심과는 사뭇 달랐다. 푸른 들판과 낮은 건물들, 그리고 강 주변에 드문드문 서 있는 작은 집들이 평화롭게 보였다. 하지만 이 고요한 풍경 뒤에는 전쟁의 아픔이 깃들어 있다는 사실이, 도착하기도 전에 마음을 무겁게 했다. 박물관 입구에 들어서니 한눈에 보기에도 오래된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담담히 역사를 증언하려는 듯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나는 숨을 고르고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박물관 안에서 마주한 아픈 기록들

전시실에 들어서자 차가운 공기와 함께 무거운 정적이 감돌았다. 한쪽 벽에는 일본군이 남긴 군복과 군장, 녹슨 총과 헬멧이 전시되어 있었고, 다른 한쪽에는 연합군 포로들이 사용하던 일상 용품들이 놓여 있었다. 허름한 그릇, 낡은 신발, 손때 묻은 일기장 같은 것들. 전쟁의 잔혹함은 화려한 무기보다도 오히려 이런 사소한 물건들에서 더 절실히 다가왔다. 나는 한 진열장 앞에서 발길을 떼지 못했다. 거기에는 포로의 일기장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희미한 글씨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내일도 살아남을 수 있을까.” 그 짧은 문장에서 당시의 공포와 절망, 그리고 희망을 놓지 않으려는 의지가 동시에 전해졌다. 전시관 곳곳에는 당시 포로들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뼈만 앙상하게 남은 몸으로 철로를 놓는 장면, 열악한 환경 속에서 병으로 쓰러진 모습. 나는 그 사진들을 바라보며 숨이 막히는 듯했다. 단순히 교과서에서 배운 역사가 아니라, 실제로 살았던 사람들이 겪은 참상이 내 눈앞에 펼쳐져 있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전시실에는 희생된 포로들의 이름이 새겨진 명판이 있었다. 끝없이 이어지는 이름들을 바라보다가, 나는 결국 발걸음을 멈추고 두 손을 모았다. 그 순간, 전쟁이라는 단어가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누군가의 삶을 앗아간 현실이라는 사실이 뼛속 깊이 와닿았다.

평화를 되새기며 돌아오는 길

 박물관을 나서자 햇살이 쏟아지고 있었다. 무거운 마음을 안고 근처 콰이강 다리로 향했다. 영화 <콰이강의 다리>로 유명해진 이곳은 지금은 관광명소로 자리 잡았지만, 다리 위를 걷는 내내 단순한 관광지로 느껴지지 않았다. 다리 밑으로는 차오프라야강이 유유히 흐르고 있었고, 강 위를 오가는 작은 배들이 평화로워 보였다. 그러나 이 다리가 완성되기까지 수많은 포로들이 목숨을 잃었다는 사실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다리 위에서는 현지 가족들이 사진을 찍고, 연인들이 손을 잡고 산책을 하고 있었다. 그들의 웃음을 보며 나는 아이러니한 감정을 느꼈다. 바로 이 평화로운 일상이 전쟁의 희생 위에 세워진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하지만 동시에, 그들이 평화를 누리고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전쟁의 희생을 헛되지 않게 만드는 길일지도 모른다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돌아오는 길에 버스 창밖으로 보이는 석양은 유난히 붉었다. 나는 그 붉은빛을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앞으로 어떤 삶을 살든, 전쟁 없는 세상이 얼마나 소중한지 잊지 말자.” 깐짜나부리 전쟁박물관에서 보낸 하루는 단순한 여행이 아니었다. 그것은 평화에 대한 깊은 성찰이자, 나 자신에게 던진 하나의 질문이었다.